[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69. 20:1-8. "예수의 권위에 대한 질문"

2021. 12. 27. 17:44누가복음강해

 

 

 '메시아'의 구약에서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 즉 '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시대가 구약의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합시다.
 '왕'과 관련된 의미들을 지니고 있던 상징들 중에서 성전이 그 중심이었습니다. 최초의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은 성전에 대한 원래의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그 성전을 지었습니다. 포로시기 이전의 왕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두 왕이었던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성전을 깨끗게 하고 회복시켰습니다. 또한 중간기 시대의 유다 마카비는 성전을 정결케 함으로써 100년을 넘게 제사장적 왕조를 창건하였습니다. 성전 재건은 헤롯이 자신의 왕조를 창건하였다고 주장한 것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2차 유대 전쟁을 일으켰던 바르 코크바는 성전 재건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동전들 위에 성전을 새겨 넣었습니다. 성전과 왕권은 이런 식으로 보조를 함께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이스라엘의 싸움을 싸워야 할 자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성서의 시편에 의하면, 다윗의 진정한 후계자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물리침으로써 다윗의 주권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아는 앗시리아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요시아는 민족의 원수와 맞서 벌인 싸움 속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유다 마카비가 성전을 깨끗케 하기 이전에, 그는 시리아인들에 맞서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헤롯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기 전에, 유대인들을 괴롭히던 바대인과 나바테아인들에 맞서 싸움에서 군사적인 주목할 만한 승리들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점령군에 의해서 처형된 자였습니다.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참된 메시아가 아닌 것입니다. 
 어떤 운동을 메시아적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로마 당국(그들에게는 카이사르가 유일한 참된 왕이었다)과 '유대인의 왕'이라는 호칭을 자처한 헤롯 왕조로부터 고초를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메시야에게 기대했던 그런 일들을 예수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왜 예수님에게 그 단어를 사용을 했을까? 
 또한 실질적으로 메시야가 없는 메시아 운동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라고 했던 인물이 실패한 혁명 지도자로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그것은 한층 더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던,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라는 주장을 하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예수가 메시야라고 주장이 나오게 된 계기는 '부활', 오로지 부활이었습니다.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운동은 메시야적이지 않았습니다. 부활 사건이 그 운동을 메시야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허구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역사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죽고 난 후 초대 교회 공동체의 일원들이 불렀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으면 이해하기가 좋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의 권위에 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합니다(1-2). 이들이 예수가 성전을 뒤엎은 사건과 그런 예수가 자격증도 없이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성전의 권력자들에게 있었서는 성전을 뒤엎은 사건은 중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민중봉기 일어나지 않고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은 것을 원합니다. 이들은 로마 당국이 무엇을 싫어하는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정복지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형은 반란군에게만 허용이 되는 형벌제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예수님 옆에서 같이 십자가형을 받은 두 사람은 로마가 보면 도적이지만 이스라엘에서 보면 혁명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가에 질문을 합니다(4절). 그런데 그들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을 합니다(7절). 이에 예수님은 나도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8절).
 에수님은 왜 요한의 이야기를 했을까? 당시 세례 요한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선지자로 평가를 받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와 하늘의 소리가 내려오면서 왕의 신분과 권위가 예수님에게 공적으로 수여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참 예언자라면, 예수님은 성전을 관할하는 권위를 지닌 참 메시야입니다. 요한이 참 메시아가 아니라 백성을 혼란에 빠뜨린 위험한 몽상가에 불과하다면, 예수님도 선을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권세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권세자들에게 성전을 뒤엎고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말해주어도 그들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자기들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고정관념. 구약시대는 '부'가 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은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내려놓지 못한 것입니다. 그 당시 '부'는 '땅'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물질을 숭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을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맘몬 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 당시 권력자들과 사회의 지도층들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못 받아들여서 또다시 이스라엘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바로 잡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뜻이 자기들과 다르다고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지 않으려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똑바로 알고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두 번 죽이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아니면 그 당시 성전의 권세자들처럼 믿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