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75. 21:20-33. "예루살렘 고통을 예고하시다"

2022. 1. 5. 21:21누가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의 고통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크리스마스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캐럴도 들을 수 없습니다. 끝없이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부족한 앰뷸런스를 국제 적십자가에서 지원하기로 했으나, 정작 필요한 이스라엘이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앰뷸런스에 그려있는 십자가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 어린이가 십자가를 그리지 않도록 산수책에 더하기 부호를(ㅗ) 자로 표시한다고 합니다. 예수가 죽은 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에게 복음은 이렇게 닫혀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유대전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합시다. 민중봉기가 일어난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전직 대제사장의 아들 엘르아살을 중심으로 로마황제를 위하여 정치적으로 매일 드려지던 희생 제사를 중단하였습니다. 한편 현직 대제사장은 유대인 정치권력을 장악한 수구파 평화주의자들인 바리새파 인사들과 함께 플로루스 총독에게 열심당원을 진압하라고 원군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심당원들은 오히려 사해바다 앞에 있는 헤롯왕의 요새 마사다를 습격하여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예루살렘 성에서 로마 군대를 완전히 내어 쫓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점령으로 인해 봉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로마제국을 대항하는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던 유대인들도 운명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봉기는 54~68년간 이어졌습니다.
 68년 6월 로마황제 네로가 자살을 함으로써 이후 로마제국은 무려 4명의 황제가 바뀔 만큼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70년 베스파시안 장군이 황제가 되고 그의 아들 티투스가 70년 봄에 로마 3개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그 해 여름에 함락을 했습니다. 64년 헤롯 왕에 의해 완성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불과 7년 만에 초토화되었습니다.
 네로황제가 자살을 한 후 베스파시안이 황제로 등극할 때까지 로마제국은 권력투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던 로마 군대의 공격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내의 유대인 지도층도 온건파와 열심당원 간의 유혈충돌로 이어지는 권력투쟁이 벌어지면서, 유대 땅의 독립전쟁은 우연히 공백 상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따르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북쪽 요단강 건너편 10개의 로마식 신흥도시 데가볼리 중의 하나인 펠라라는 작은 마을로 피신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기 전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눅 21:21).
 예루살렘의 함락은 처참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성소의 금촛대와 지성소의 보물들이 로마로 옮겨졌고 그때의 예루살렘 승전을 기념하는 개선문이 현재의 프랑스 파리에 세워졌습니다. 끌려간 유대인들은 로마 시내를 행진한 후에 검투사로 넘겨져 로마인들의 유희 거리로 죽어갔으며 처형되었습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던 반 세겔의 성전세는 베시파시안 황제에 의해 인두세로 로마의 주피터 신에게 보내지도록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경제적 부담을 넘어 이방신에게 우상숭배를 해야 하는 치욕을 겪기 시작했고 나라를 잃었습니다.
 로마의 공격에서 도망해 살아남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 배신자로 여겨졌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받아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따라야했기 때문에 자기 민족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입니다.
 20-24절의 말씀은 우리가 해석하기 좋습니다. 이 대목까지 누가가 전해 준 예수님의 말씀과 전부 들어맞습니다. 엄청난 위기의 때가 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예수님이 주장하신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르지 못하면 참담한 결과를 맞을 것이다. 로마인들이 와서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빠져나와 도망칠 수 있는 자들은 아직 시간이 남았을 때 도망을 해야 한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서둘러 바벨론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듯이(사 48:20; 렘 50:8),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직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예루살렘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고는 70년 이후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일월 성신의 징조"(25-26)의 해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표현은 흔히, 지상의 큰 민족과 왕국이 '격변기를 거친다'는 뜻으로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당시 네로 황제가 자살을 하고 4명의 황제가 바뀌는 등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는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로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가장 대중적 예언이었던 이 부분을 두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짐승' 즉 그들을 억압했던 이방 민족의 손에 고난을 당한 뒤에 정당성을 인정받는 때를 가리킨다고 믿었습니다. 이 예언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인자'를 두둔하고 포악한 '짐승'과 맞서는 거대한 법정 장면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이방 민족에게 임하는 심판은 '인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심판과 똑같습니다. 인자는 그 뒤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서 하나님과 왕위를 공유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예수의 재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으로 보는 것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최선의 길입니다. 
 29-33절의 은유는 제자들이 찾아야 하는 징조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지만, 하나님의 도시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그 도시의 파괴를 뜻한다.어째든 예수님이 마지막 예언자이기에, 한 세대 안에 모든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들을 보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자는 더 이상 없다(20:13)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물론 이방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의 파괴가 이천 년전에 일어난 과거사이지만 교회사를 통하여 크고 작은 환란은 계속되었고 또한 지금도 예루살렘이 예수님께 한 것처럼 평화의 호소를 거절하기 일쑤인 세상에 살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예수님이 무엇을 전했는가를 잘 이해를 하고 있는가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평화와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을 이어오는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전쟁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치러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전쟁으로 인하여 죽어갔습니다. 심지어 종교개혁 이후 같은 개신교들 사이에서도 교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종교가 민족적 이념이나 신념과 혼합이 되면 무서운 결과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수많은 권력자들은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종교를 이용해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성도들이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에 대하여 잘 알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십자군 전쟁 때에도 십자군 전쟁에 참가를 하면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으로 일반 백성들을 호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성도들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해서 그 전쟁에 참가를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황은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제일 먼저 죽인 것이 그 당시 고리대금업을 하던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고 유대인들을 학살을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사건인가!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들이 똑바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다 같이 수렁으로 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맹인이 길을 인도하는 것같이~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영적으로 맹인이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