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33. 12:11-18. "바울이 구하는 것"

2024. 6. 20. 10:23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본 서신의 핵심에는 통치권과 리더십,, 봉사, 그리고 이기적인 권위의 위험에 대한 논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이런 것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주요 내용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내용은 자신의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마지막 당부의 말씀만을 남겨 두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방문은 그가 교회를 설립했을 때이고, 두 번째 방문은 2:1가슴 아픈 방문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 가면서 추구하는 단 한 가지 일, 즉 어떻게든 가려고 하는 단 한가지 이유가 그들의 종이 되는 것임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돈은 고사하고, 그들에게 큰 영광을 받으려는 야심도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지원하고, 더 나아가 풍요롭게 해야 할 사람은 교회 전체에 유익을 끼치려고 하는 사도 바울 자신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3절까지는 교회에 대한 염려와 자랑 그리고 사도권에 대한 마지막 변호를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12:11-13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바울은 자랑하기보다는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사도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자랑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임을 고백했지만 소위 자신들이 가장 뛰어났다고주장하는 사도들과 비교해서 결코 조금도 못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또한 자신이 참된 사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것에 대해 변호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거짓 사도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교훈을 따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로서의 기적을 행함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에 인도하였고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켰습니다(고전(고전 12:4-31), 또한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스스로 자급자족하고 고린도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참 사도임을 인정하는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추천서는 어떤 것인가? 바로 사도의 표지가 담긴 추천서란 것입니다. 사도의 표지는 거들먹대는 수업 방식과 사회적 지위, 경쟁 교사들이 얻으려고 분투했던 물질 따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 내는 삶의 결과물, 곧 성령께서 정말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과 능력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처음에 자기들과 함께 있었을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났음을 아는 까닭에, 그들이 직접 바울에게 이 추천서를 써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온 교사들의 중상모략과 냉소로 인해 그들은 바울에게서 마음이 돌아섰던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의 돈을 받지 않은 것이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스스로 믿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12: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 나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바울은 세 번째 방문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번 방문에서도 이전처럼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영적인 자녀로 생각하였습니다(고전 4:15).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드로부터 생활비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 즉 시간이나 물질, 건강, 사랑들을 기꺼이 사용하고 자신까지도 내어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이 덜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15절에서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16절에서 거짓 사도들이 자신들이 교인들의 재물을 교묘하게 탈취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바울이 그렇게 한다고 뒤집어씌우려고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다는 구실로 돈을 모아 착복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던 것처럼 보입니다(13:2).

 12:17-18,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바울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 동료까지 당당하게 직접 변호하고 있습니다. 디도,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그와 동행했던 동료 그리스도인은 나무할 데 없이 행동했다는 것을 고린도 교인들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 그런데도 왜 거짓 교사들의 거짓말을 귀담아듣는 것이냐고 강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각되는 근본적인 교훈은 교회가 배우기에 버거운 것입니다. 이 편지 앞부분에서 선정된 몇 군데의 강조부를 제외하고 고린도후서가 성경 공부나 설교 본문에서 자추 채택되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 사역, 진정한 사도적 사역은 강력하고 효과적이지만, 그것은 또한 마땅히 더 많이 이해해 주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공격을 받을 거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본 서신에서 보여준 끈질긴 논증과 성경 해설, 상황 설명, 솔직한 개인적 호소, 그리고 풍부한 유머와 반어법으로 공격에 응수하고 있는 것을 표본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교회에서 어떻게 지도를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