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21. 5:6-11. "하나님과의 화해"

2023. 10. 20. 12:33로마서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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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화해의 의미를 계속 탐구하면서 그러한 화해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하셔야만 했던 일의 의미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우리가 약하고 무력한 죄인이었을 때 메시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건 가장 위대한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나 자기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사랑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기'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경건하지 않다고'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닮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자칭 경건하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 같은 인간들을 위하여 죽지 않으셨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아무런 필요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지키는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래부터 경건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니"(3:23). 본성적으로 우리는 모두 불경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런 연약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건치 않을 때의 우리를 위해서도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우리들은 의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죄인들이라는 것을 바울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입증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6-8절까지 바울의 논증은 우리 안에는 우리를 내세울 만한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대가없이 얻은 것이며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 그것에만 달려 있고 내 안에 있는 아무것에도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고 확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9-10,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이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본절은 6~8절에서 끌어낸 결론을 더 상세하고 강한 어조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신 일의 과거, 현재, 미래 시제를 사용합니다. 그는 2장에서 궁극적 미래를 설정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고, 이 심판은 전적으로 의롭고 공정하고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3:32-4:25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믿을 때, 사람들은 현재 시점에서 언약 가족에 속해 있음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언약 가족이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미 '의롭다'는 판결을 얻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가 아직도 살날이 많이 남아 있는데 앞으로도 우리들은 온갖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미래의 판결이 이미 알려져 있다는 이러한 확신을 믿을 수 있는가? 로마서 5-8장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쓴 것입니다. 그 대답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곧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현재 받은 판결이 미래에 재확인되는 그러한 희망으로,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에 확고히 기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력한 죄인이었을 때(6,8절), 메시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큼이나 사랑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이 다가올 심판 날에 우리를 구하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9절), 그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신 것입니다(10절).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히 복음을 믿으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본문에서는 '즐거워하다'가 핵심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바울이 2:17과 3:27에서 말한 내용을 보면 바울도 그랬던 것처럼 모세 율법 아래 살던 사람들은 창조자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이러한 특별한 지위를 보장받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이러한 기쁨과 자랑이 모두 공허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인간의 모든 교만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고난 중에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5:3).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십니다"(시 48:14)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나는 진정으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을 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