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5. 21:18ㆍ사도행전강해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동안이나 두란노서원이라는 곳에서 집중적인 성경 강해를 했고 그리고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심지어는 사도 바울의 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지고 병자에게 얹기만 해도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마술 책 곧 그 값어치만 해도 은 오만이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술 책을 모두 불에 태워 버리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런 부흥과 기적에 가세해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 가짜 부흥사 노릇을 하다가 악귀가 덤벼드는 바람에 알몸으로 상처를 입고 도망을 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부흥도 놀라웠지만 세상 권세의 반격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19:23, “그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바울이 어떤 도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대개 부흥이 일어났고 그다음에는 소동이 일어나 떠나게 되는 일이 생겨납니다. 에베소에서 또한 반복되는 패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19: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아데미 여신은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었고 그 역사는 길었다고 합니다. 옛날 옛적에 운석 하나가 에베소 근처에 떨어졌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에서 내려 준 선물로 생각하여 여신의 조각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35절에서 시의 서기관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데미 신전은 거대했고, 전적으로 여성 관리들이 운영한 그 종교는 그 지역 전체의 중심 종교였습니다. 그 신상은 유방이 여러 개인 어머니 여신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당시 아데미 여신으로 인하여 에베소에서는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앞절에서 본 것 같이 마술 책을 불태우고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처럼 메시아 예수의 메시지는 우상숭배를 비판하는 유대교의 선봉 역할을 하며 그 지역의 사업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폭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19: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본문에 나오는 가이오는 흔한 이름이었으며 요한 3서의 수신사로 나오고 있습니다(요 삼서 1장).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이며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과 로마의 긴 여행에 동행한 인물이었습니다(27:1-2). 성난 군중들은 바울 대신 두 사람을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에베소에서 발굴된 연극장은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시설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 상상해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연극장에 가득 모여서 흥분한 상태에 있는 군중들 앞에 바울이 들어간다는 것은 불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19:31-32,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바울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바울에게 호의적이었던 지역 관리들까지 극장 안에 들어가지 말하고 있는 것은 그토록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대다수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19:33-34,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지목하여 무리 가운데 밀쳐내었는 데는 2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알렉산더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대인들은 그를 일종의 희생물로 삼아 군중들 속으로 밀쳐내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분노를 일으키게 한 그리스도인들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알렉산더란 인물은 ‘구리 세공업자“(딤후 4:14)인지, 아니면 ”배교자“(딤전 1:20)인지는 확실지 않습니다. 군중들은 유대인들 또한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데미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 당시 에베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교와의 구분을 못했을 것입니다.
이에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을 시키면서 그것은 바울의 잘못이 아니고, 그들이 그렇게 폭동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탓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36-40절).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였던 에베소는 로마 관리들이 감시했는데,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은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에베소는 새롭게 등장하여 빠르게 확산되는 로마 및 황제 숭배의 주요 중심지로 부상한 시기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데미 곁에 최근에 추앙받는 신이 합류했고, 그 신은 정치 군사적 권력은 물론이고 상당한 종교 권력도 표방하는 신이었습니다.
빌립보에서 공개 사과를 받고 고린도에서 갈리오가 판결을 내렸듯이, 에베소의 서기장도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료들은 바울과 동료들의 말대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기소하겠지만 그들이 잘못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종종 유대인들이 자기 지역의 신들과 여신들을 모독하거나 그들의 신전을 털었다고 비난했지만 바울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유죄가 입증되지 않는 한 무죄였습니다. 그 결정과 함께 누가는 바울이 가장 오래 머물며 선교하고 목회했던 에베소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를 짓습니다.
본문은 훗날 교회를 위한 교훈이 많습니다. 예수의 능력 있는 이름에 대한 우리의 증언은 너무도 확고하여 사람들의 기득권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만, 우리의 실제 행동은 아무것도 비난받을 것이 없는 바울의 삶처럼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힘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조용하고 무력한 ‘복음의 설교’와, 다른 한편으로 시끄럽고 정신없으며 개인적,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선포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현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뱀처럼 지혜롭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 지혜 또한 하나님에게 의지를 하면서 묵묵히 우리들은 그 길을 가야 하 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오늘날 사명일 것입니다.
나는 이 시간 나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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