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5. 2:1-5. "십자가의 메시지"
바울은 이방의 신화에 반대하여 이 세계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달리, 바울과 신약의 저자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진정 사실 일 때만, 그 의미가 통합니다. 이 세상의 실체이며 혈육을 지닌 나사렛 예수와 그의 죽음 및 부활이 실체란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바울은 독자들에게 온 우주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포함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울은 창조에서 새 창조에 이르는 역사관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역사관은 이방 세계를 향해 하나의 역사 지도를 펼쳐 보이는데, 이 지도의 중심에는 '부활과 성령'이 서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이 점을 분명하게 입증합니다.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고 언젠가 완성될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관한 교리도 아닙니다. 바울의 복음은 일단 사실을 나열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와 관련된 그 이상한 사건들과 이방 세계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사건들은 그저 유대인에게 발생한 이상한 사건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위한 창조주의 계획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곧 세계의 창조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즉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모든 세계의 진정한 왕이 되시는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해석 틀 안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고 풀어서 설명했는데 이 틀은 묵시적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이런 사건들이 우주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이 소식, 즉 이 세계의 창조주가 악과 죽음을 물리치고 모든 세계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만유 안에 만유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 바로 이방인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고 바울은 생각하고 이방 사역에 열심인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2: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처럼 지성이 넘치는 도시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아주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린도에서 전도하게 되었을 때 고린도 사람들이 너무 세속적이고 우상 숭배가 심각한 것을 보고 감히 복음을 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음란하고 비도덕적이지만 그리스 철학이나 수사학 등 지적 가르침을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당시 소피스트들이 했던 것처럼 웅변술이나 수사학적 방법을 쓸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지혜나 말의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를 전할지를~ 바울은 후자를 택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적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리스인이 좋아하는 철학과 수사학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성의 도시 아테네에서 하나님에 대해 변증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지만 아테네 사람은 부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플라톤의 철학 즉 이원론에 깊이 심취해 있어서 사람의 영혼은 깨끗하고 영원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부정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과 그 예수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고 부활했다는 것을 전했던 것입니다. 즉 바울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기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복음을 믿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어떤 기적을 행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함밖에는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본문에서 '약하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실패를 맛본 후 고린도에서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는 것은 혹시나 다른 곳처럼 복음을 전하는데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욕하고 몽둥이로 때리며 훼방을 놓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이 아테네에서는 실패를 했는데 고린도에서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데 성공을 했을까? 바울은 아테네에서는 자신의 능력으로써 복음을 전할려고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테네 같은 지성의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하는 것에서도 전혀 위축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할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틀렸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실패를 맛본 후 의기소침하여 그냥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 예수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처형이 되었고 삼일 만에 부활을 했다는 것을 담백하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일반적인 수사적 기교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삶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시대에 최고의 지성인 중 한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고 있는 능력을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점에서는 바울도 똑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본능이 아테네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 또한 소피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웅변술과 수사학적 기교를 곁들여서 그들과 토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바울은 아테네에서는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마도 이때까지 전도를 했던 지역보다 아테네에서는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행을 남겨두고 혼자서 먼저 아테네로 오는데도 주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처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다가 부흥이 일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한 많은 목회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저 그런 하나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을 하여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십자가에 능력이 나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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