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강해

[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17. 6:1-11.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

이헌교 2021. 10. 24. 16:49

 우리는 바리새파가 언제 생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마카비 혁명 후 하스몬 왕조 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시리아의 안티파레스왕의 탄압을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겪으면서 유대인들은 더욱더 하나님의 율법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파들은 경건한 제의 의식을 일상생활에서 적용하여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목숨을 걸었을까요?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이방신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구약성경에서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에서는 더욱더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나오는 규례보다 더 많은 것을 적용을 시켰습니다. 이런 이유는 안식일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6:1-2,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나그네가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밭에서 곡식을 따는 것은 위법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은 유대교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안식일 규례를 엄청나게 많게 규정해놓았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완전히 형식주의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원칙과 형식을 고집하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준수의 참된 의미를 중요시하신 예수님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 
 6:3-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제사장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다윗은 그 당시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과 사울을 피해 도망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에게 왕으로써 기름부음을 받은 뒤였습니다. 예수님은 왜 다윗의 예를 들었을까요? 예수님 또한 자기를 따르는 몇 명의 제자들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니고 있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자들은 왕과 메시아와 대제사장들만이 받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로서 그리고 인자로서 안식일을 어떤 정신과 방법으로 준수하셨는가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입법자라는 의미입니다. 
 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래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이제 예수님은 안식일을 입법한 자로써 안식일의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른손 마른 사람이라고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손으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었다면 오른손 마비는 그에게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누가는 계속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적대시하는 사람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읽는 첫 독자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면 누가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고 모든 족속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6: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이 당시 안식일에는 아주 위급한 처지가 아니면 병치료를 하면 안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손 마른 사람은 목숨이 위급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안식일에 위반이 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본절 말씀은 형식과 위선의 허울을 쓰고 사람의 진정한 아픔과 필요를 거들떠보지 않는 자들의 비정함을 이미 악행 내지는 살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아마도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안식일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이렇게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설교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대로 경건함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들에게 칭찬을 해주지 못할망정 계속 그들을 가르치시려 할까요?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를 한 것입니다. 만약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를 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까요? 
 6:11, "그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왜 이들은 노기가 가득할까요? 자기들이 정해놓은 규율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인들에게도 똑같은 일어나는 일입니다. 왜 교회마다 분쟁이 있는가? 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이 유리한대로 해석을 해서 그런 것입니다. 각자의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신들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은 타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법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모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그 선교회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참 과학적이 분이시다. 우리가 2,000명정도가 수련회를 해도 코로나를 비켜가게 하셨다고" 그런데 많은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믿음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잘못 알면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에게 질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까? 간단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이 있는냐? 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는 않았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