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27. 8:26-39.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내용입니다.
8: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이곳이 어딘지는 신학자마다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면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불경한 짐승으로 간주하여 먹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이 이방인의 세계에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27,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무덤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삶보다는 죽음과 가까이 있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죽음 상태에 있는 죄인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8:2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몰랐지만 귀신은 알아보았다고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예수님은 파도도 잠잠하게 하는 자연세계를 다스리시고 또한 귀신 들린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람을 치유하시므로 영적인 세계도 다스리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8:30-31,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군대에 해당하는 헬라어(레기온)은 6,000명 정도의 큰 부대를 말합니다. 돼지는 유대전쟁 때(66-70년) 예루살렘에 동원되었던 로마 10 연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약 80년쯤에 만들어졌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면 돼지는 로마군을 뜻하는가? 아마도 누가복음이 쓰일 무렵에 로마 군대 대한 감정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돼지들을 다 물에 빠져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8: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한 사람의 생명은 수천 마리 돼지와 바꿀 만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8:35,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그들은 왜 두려워했을까?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처음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역으로 인해 그들은 많은 손해를 이미 입었습니다. 혹시나 예수님으로 인해 그들에게 더 많은 손해를 입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8:38-39,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알려면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를 알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귀신 들린 한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 수천 마리의 돼지를 죽으셨을 만큼 한 인간을 소중히 여겨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끊임없이 과부와 어린아이 그리고 나그네를 보살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라는 것입니다. 그럼 귀신 들린 사람은 어떤가? 오늘 말씀처럼 군대 귀신이 나간 사람은 학생처럼 예수님의 발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내면에서 귀신이란 존재가 없어지니까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귀신들린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고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 귀신 들린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어떤 큰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전도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전도프로그램이 필요가 없고 제자훈련도 필요가 없습니다. 왜 필요가 없을까? 그들은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서 미치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만날까를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프로그램을 돌리고 제자훈련을 시켜서 양적 팽창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숫자 놀음이 아닙니다. 질적 팽창을 추구하다 보면 양적 팽창은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부흥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각 교회에서 영적 부흥이 일어나야지 그다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부흥을 위해서 우리들은 끊임없는 영성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하나님과 사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자기의 생사화복을 위해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적용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그 성경말씀이 살아서 내 안에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꼭 내가 병을 치유받고 기적을 경험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성경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적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는 진정한 기적을 경험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