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65. 19:1-10. "삭개오를 부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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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세리장 삭개오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누가는 삭개오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시는데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1-2절). 세리장은 곧 세관장을 의미하는데 여리고는 베레아 지방으로부터 요단강을 건너가는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세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 세관의 우두머리로 세금 징수를 지휘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당시 세리에게도 '허가 낸 도둑'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하물며 세리장이라고 하니 그가 받은 원성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재물에 비례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재산이 늘면 늘수록 그는 백성들의 피를 더 많이 빨아먹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를 우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라고 부릅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를 보게 됩니다(3-4절),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5-6절).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세리들과도 어울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도 소문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위가 있고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은 그의 내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누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청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영접을 한 것입니다.
18: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뭇사람들 중에서 왜 예수님은 그 당시 죄인 취급을 받던 삭개오의 집을 택했을까? 그들은 방관자들이 아닐까~그리고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가니 그들은 예수님을 폄하를 합니다. 자기들의 사고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입견은 무섭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선민사상이 굉장히 강한 민족입니다. 그리고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였습니다. 세리는 부정한 죄인에 속한 무리였습니다. 그런 부정한 자와 어울리는 예수를 그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을 하려면 이런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제 갑절이나 갑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은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내어 놓는다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말하면 병 고침과 귀신 물리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감사를 했는데 삭개오는 이런 은혜도 받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산을 내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세금을 징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전부다 기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리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 임이로다"(9절)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앞장에 나오는 부자 관원이 삭개오처럼 자기도 재산을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를 하겠다고 했으면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을까? 아마도 예수님은 부자 관원에게 '머리 굴리지 말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를 묻는다면 삭개오는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내어놓겠다고 했습니다. 그 재산을 만들기까지 삭개오는 수많은 욕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부자 관원은 예수님이 재산을 다 팔라고 하니 생각을 하다가 자기의 재산이 아까우니깐 그 절충점으로 절반을 내어놓겠다고 하니 예수님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힘없이 예수님을 떠나가는 부자 관원과 구원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삭개오를 비교해보세요. 이것이 성령의 역사함이 아니겠는가~만약에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삭개오가 예수님의 일생이 여리고를 지나갔을 때 나는 이제 예수님을 보았으니 나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앞으로 정의롭게 살아야지라고 결심을 했을까?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을 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을 하니 삭개오는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7).
18: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여 함이니라" 잃어버린 자는 무슨 말일까? 소외된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러면 소외되지 않은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바로 우리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병 고침이나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고 우리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마음이 생기면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갖다 놓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을 했다고 하면서 무엇을 포기했는가~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