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강해

[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70. 20:9-19. "소작인 비유"

이헌교 2021. 12. 28. 16:47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도원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는 앞에서 말한 세례 요한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말씀과 정확하게 부합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는 예언자들의 계보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포도원에서난 열매를 요구하기 위하여 온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심판에 절정에 달하는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5:1-7과 시편 80편에 나오는 잘 알려진 성서의 주제를 가져와서 그것을 좀 더 발전시켰습니다. 이사야서를 통해서 이사야 시대에서나 예수 시대에서 성전은 예언자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의해 파괴될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성전에서의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시한 것입니다. 종들과 아들을 보냈으나 결국 그들 모두가 거부당한 것을 본 주인은 결국 와서 농부들을 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장차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킵니다. 예수의 성전 행위는 다가올 심판의 상징이었고 이는 메시아적 심판 행위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에게서 종들을 보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1세기 유대인들에게 주인은 하나님을, 농부는 이스라엘을, 종들은 예언자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에 보낼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자 주인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이해에 따르면, 자신은 정당한 왕으로 아버지의 소작인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은 소작인들은 예수님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내쫓아서 죽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야기의 의미가 분명합니다. 여기까지 누가복음서 전체 내용과도 의미가 맞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의 후계자인 예수님은 그들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즉 마땅히 바쳐야 할 영예와 순종을 언약의 하나님께 다시 바치도록 이스라엘에게 도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삶에서 정의의 열매를 맺고 주변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낼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만 은혜를 독차지하고 불의를 행하면서, 필요하다면 폭력까지 불사하며 주변 세상을 내쫓고 거부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평화의 길을 거절했고, 이제 마지막 아들마저 거절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포도원 주인은 결국 돌아오고 그때 이방 나라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임할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입니다. 
 "건축자들이 거부한 그 돌"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보냈으나 거절당한 메시아가 머릿돌로 사용되었다는 말입니다. 시편 118:22에서 인용한 이 부분은 포도원 비유와 사뭇 다른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대형 건축 사업에 쓰려고 마련한 석재가 가득한 공사장을 상상해 보세요, 일꾼들은 각종 돌들을 각각의 크기와 모양대로 분류해 두었다가, 건물을 짓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돌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작업이 끝나면 밖에 버릴 요량으로 그 돌을 그냥 버려둡니다. 하지만 작업이 거의 끝나 갈 즈음, 모퉁이의 꼭대기를 마감하기 위해 특별한 모양의 돌이 마지막으로 필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전에 버렸던 돌이 있었습니다. 그 돌은 다른 곳에는 맞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딱 맞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핵심을 반복해서 납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일꾼들이 지금은 예수님을 거절하지만 그분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메시아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분은 진짜 성전을 지으시고, 친히 성전의 주인공,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실 것이라고 20:18절을 해석을 하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실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오늘날 예수님이 오셔서 권력과 불의의 장소로 갈 때 무슨일이 일어날까? 성도들이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대신 자신만의 안정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곳에 복음이 선포될 경우, 과연 복음은 어떤 반응을 가져올까? 당연히 거부와 충돌이 있을 것입니다. 
 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아닌 백성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예루살렘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멋진 성전은 있지만 그 성전의 주인은 두렵지가 않고 그 성전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백성들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 말은 참 무서운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나님보다는 성도들이 원하는 것을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은 설교말씀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듣고 힘이 되고 은혜가 되는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은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어느덧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고 성도들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의 편익을 위하여 교회들은 앞다투어 화려하고 최신시설로 재건축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교회밖에는 수많은 노숙자들이 하루하루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과연 교회가 이런 어두운 부분을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받친 헌금을 함부로 사용을 할 수 있을까? 
 이 시간에 생각을 해봅시다. 나는 과연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우리에게 원하고 요구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