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78. 22:24-38.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다"
예수님은 종말론자입니다. 그러나 그 종말은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종말을 기대하거나 선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군사적 혁명이라는 통상적인 대안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에 의해서든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서든 성전의 재건을 내다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현재의 악한 시대의 종말, 장차 성전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는 가운데 이루어질 야훼의 백성의 재구성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언자로서 예수님은 엘리야, 에레미아. 에스겔과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이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엄숙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여러 예언자들이 왔다가 갔으나, 모두 무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계보 속에서 마지막으로 온 예연자였고, 세상 권세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진정으로 유대적인 모든 하나님 나라 선포들과 마찬가지로 이교의 세력, 이교의 신들, 이교의 정치에 반대하는 한 분 참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메시아로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 유다로부터 시몬 벤 코시바에 이르기까지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그 밖의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길은 평화의 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원수의 무기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싸움을 싸우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 하나님 나라를 원칙적으로 상실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 나라를 곧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그 나라를 상당 부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옛 예언자들과는 달리 이교들에 대한 민족주의적 승리를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원래 이스라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 즉 세상의 빛이 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닌 사업을 선포하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사역을 몰랐고 이해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년을 따라다녔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메시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면 로마제국 군대와 그 당시 성전을 관리하던 대제사장들과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을 다 물리치고 예수님이 다윗왕과 같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팔레스타인 일대를 다스릴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혁명이 성공한 후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논공행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말씀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중요하나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24절) 이에 대해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왕들은 백성 위에 군림을 하고, 권력을 잡은 자들은 은인으로 불리지만 너희들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아야 한다며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26절). 그러면서 예수님 또한 섬기는 자로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하십니다(27절)
그러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주신 나라를 내가 너희에게 물려준다"고 하셨습니다(29절).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시몬은 제자들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너무나 나약하게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고 다들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결국은 세 번을 부인하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예견하시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보해사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비로소 제자들은 영안이 열려서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그들 또한 예수님에게 능력을 받아 사역을 했지만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제자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2:35-36,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여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어서 전도사역을 보내었습니다(9:1-6, 10:1-20). 그리고 악의 세력에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은 치열한 전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살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 스스로 고난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22:37,"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 53:12를 인용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의 고난을 예언의 성취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의 수난이 임박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 제자들은 칼 두자루가 있다고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그만하면 됐다"(37-38절)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칼 두 자루면 당면한 임무에 충분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녹초가 되어 대화를 완전히 중단하십니다. 그들은 구구절절 작정하고 예수님을 오해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고대하던 식사자리에서, 그리고 배신과 체포와 그 뒤에 이어질 모든 일을 기다리면서 예수님이 느끼신 더없는 외로움이 묻어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인 것 같습니다. 그 외로움을 뒤로하고 친인척과 친한 동료들의 몰이해와 반대, 의심, 부인에 굴하지 않고 그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워주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은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처럼 제자들 가운데 계십니다. 이것은 그 당시 문화에서는 세상의 관념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는 불법자로 여김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버림을 받고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오히려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런 제자들을 온 세상을 바꾸는 일꾼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열심'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 생각을 해봅시다. 현재 나의 신앙의 성장은 어느 정도까지 도달을 했는가를~ 유년부, 소년부,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인가를~미국의 유명한 목회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의 성숙은 청년부까지는 자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부의 신앙은 '주여 나를 선교지로 보내주소서'라고 부르짖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년부'의 신앙까지 자라는 성도들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녀부의 신앙은 무엇일까? 마치 우리의 자식들이 성인이 되면 우리들과 친구처럼 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단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장년부 신앙'을 가져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나는 과연 장년부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