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

[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1. 1:1-5. "속편이 나오다"

이헌교 2022. 1. 4. 15:59

  사도행전은 원래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낸 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도행전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보내신 편지인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고 그 성령께서 우리 믿는 자들과 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편지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우리 믿는 자들과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며, 그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시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능력을 주시고 계신지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믿는 자나 교회가 사도행전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오순절에 처음으로 임하신 성령의 강림을 증거하고 있으며, 또 핍박 가운데서 승리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복음이 언어와 인종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증거 되었으며, 또한 전혀 기독교를 모르는 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이 처음 변증 되었는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읽어나가야 합니다. 일단 이 책은 당연히 초대 교회의 이야기로 읽어야 합니다. 또한 누가는 우리가 이 책을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책으로 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요 인물인 예수님은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책의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되도록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누가는 두 권의 상당히 분량이 큰 책을 기록하였는데, 하나는 누가복음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사도행전입니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 모두 데오빌로라고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물론 누가가 데오빌로하는 한 사람만을 위하여 그 큰 두 개의 책을 저술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데오빌로가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즉, 유대전쟁을 끝나고 공적인 책을 출판하려고 하면 총독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누가가 출판을 위해서 이 사도행전은 전혀 불건전한 사교나 비도덕적인 글이 아니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기록하게 한 글로써 전혀 로마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승인을 데오빌로에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주장일 것입니다. 아무튼 누가는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을 로마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공적으로 인준을 받고 출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는 오늘날 ‘지성인 독자’라 할 만한 사람들을 겨냥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 책이 예수님이 계속해서 행하시고 가르치시는 일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비로운 존재감이 이야기전체를 맴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으로써가 아니라 살아 있고 강력한 실재인 왕이자 주로 선포되며,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따를 수 있는 존재, 또한 현실에서 계속해서 행동하시는 존재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도행전보다는 ‘예수 행전 2’로 생각해야 합니다.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누가는 이 책은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몸은 이제 하나님의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자체의 요점은, 그것 없이는 복음도 없고, 예수님이 왕으로써의 행적과 가르침도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남는 것은 위대하지만 실패한 선생이자 자칭 메시아에 대한 슬프고도 찬란한 추억뿐이라는 것입니다.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누가가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말씀하시며 약속을 하십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의 시작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온 이스라엘을 회개와 갱신의 세례로 부르던 그때와 같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분명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즉 물에 푹 빠지는 대신, 성령에 푹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이 재건되는 갱신이 아니라, 인류가 재건되는 갱신을 경험할 것이며 하나님은 온 세상의 왕이 되신다는 것을 경축하면서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영성과 신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기 전에 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령 세례입니다. 이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앞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조금만 알면 이들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마구 행동을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기다리라고 합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얻고자 기도하고 그리고 그 힘으로써 우리의 소명과 에너지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지 우리들의 힘이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의 힘으로 한다면 이것은 우리들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우리들의 ‘의’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써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나의 의지와 능력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