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

[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28. 8:4-25. "마술사 시몬"

이헌교 2022. 3. 28. 12:26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한 핍박 때문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유대와 아시아의 여러 곳으로 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중에서 구브로라든지 안디옥 같은 곳이 대표적인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이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였습니다.

 8:5-7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완전히 버려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마리아는 완전히 버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음은 바로 이런 버려진 사람들 속에도 들어가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의 정통성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혼혈족들이었습니다. 즉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을 때 앗수르 왕은 북이스라엘 족속들을 전 세계에 흩어버리고 이방인들을 사마리아에 거주시켰습니다. 그나마 겨우 남은 이스라엘 족속들은 앗수르인들이 이주시킨 새로운 거주자들과 동화되고 혼합됩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교의 형태는 유지했지만 주요 내용들은 바꾸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은 서로 증오했고, 두 민족 사이에 폭력 사태가 여러 차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차별대우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서두에서 예수님은 추종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대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1:8). 그런데 그 일이 예기치 않게 박해를 통해서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빌립은 6장에서 집사 중 한 명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는 스데반이 죽은 후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지만 빌립은 결코 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마리아에 있는 도시로 갔습니다. 또한 그는 21:8에서 언급이 되는데 나중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네 딸과 함께 가이사라에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수 세기 동안 이어 온 금기를 깨트렸습니다. 아마도 빌립이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을 오랜 문화적 경계와 반목을 뛰어넘는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개종자들은 믿음을 갖고 세례도 받았지만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성령을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내 개종자들에게 안수하고 성령을 받도록 기도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누가는 본문에서 명확하게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오순절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방언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사건은 복음이 어느 곳에 전파되든 새롭고 예상치 못한 도전들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는 이야기합니다.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마술로 사람들을 속이고 돈을 많이 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빌립이 복음전하는 것을 보고, 자신보다 센 마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몬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들여 세례도 받고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빌립의 능력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진실로 예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마술에다가 빌립이 가진 능력을 더해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할 계산으로 그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믿는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시몬은 그들의 더 강력한 ‘마술’을 보고는 즉, 사도들에게 안수받은 사람들이 기적같이 변하여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언어를 얻었는데 시몬도 그것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이 원한 것은 성령의 선물을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수해서 성령이 임하게 하는 능력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베드로가 능력을 돈을 받고 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적 직분이나 지위나 권력을 사려는 것을 의미하는 ‘simony'(성직 매매)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그런 돈은 결국 파멸로 갈 수밖에 없으며 당신도 파멸할 것이라고 꾸짖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시몬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누가는 시몬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는가봅니다. 다만 시몬이 그 일을 면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베드로에게 애원했다는 사실만 기록했을 뿐입니다. 누가는 시몬의 운명보다는, 성령을 인간의 통제 아래 두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그런 시도를 분명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것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의 의지대로 받고 싶다고 받고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는 분명하게 본문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성령의 바람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는 우리들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령이 원하시는 일에 마음을 열고, 급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에 따라 움직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시간 나는 성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