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

[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31. 9:10-19상. "아나니아와 사울"

이헌교 2022. 4. 5. 12:09

 

오늘 본문 말씀은 사울이 아나니아에 의해 성령 세례를 받고 회복하는 내용입니다.

 9:10, “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니나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성경은 아나니아가 어떻게 예수님을 추종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22:12에 한 번 더 언급됩니다. “율법에 따라 사는 경건한 사람으로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자”라고 바울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알았고, 매우 위험해 보이는 일에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보내진 곳으로 가서 지시받은 대로 했던 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지혜와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9:13-14,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사울이 다메섹으로 온다는 사실을 아나니아가 알고 있다는 것은 다메섹에 있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 중에는 피신을 한 자도 있었을 것이며 아나니아처럼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11절에서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사울은 무엇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사울은 매우 혼란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흘 동안 기도했으면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결정했을 시기였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나니아가 도움을 주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스몬 왕조 때부터 이어져온 적대관계가 계속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사두개파에서 임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울은 대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특권을 부여 받아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체포하러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사울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이단자들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울을 주님은 특별한 임무를 위해 부르셨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좋은 소식이 더 넓은 세계로, 이방인들의 세계로 하나님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로 전해질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할 사람, 율법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적합한 사람은 그 메시지를 근절하는 일에 다른 누구보다 열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이방인들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을 할 사람은 강경하고 맹신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에 초정통 유대인이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울은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디트리히 본히펴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부르실 때는 와서 죽으라고 부르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울도 그랬고, 사도들도 그랬고 기독교의 역사 속에 수많은 사역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면서 우리들의 야망이나 안락함이나 권력을 꿈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은 모든 것 즉, 구제와 봉사, 십일조, 주일성수, 심지어 목회까지도 우리들의 ‘의’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9:17-19상,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의 마음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은 사흘 동안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아나니아가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한 줄기 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로써 사울은 준비된 영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준비된 영혼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아나니아처럼 예수님과의 영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명예, 권력을 원하면서 예수님을 도구로 사용하여 기도하였다면 과연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이런 큰 일을 맡겼을까?

 누가는 사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영안이 열렸다는 것인지 아니면 누가가 의사이기 때문에 진짜로 비늘이 벗겨졌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울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입니다.

 만약에 다메섹에 아나니아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기독교가 존재했을까? 이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울처럼 전면에 나서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뒤에서 내조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나니아처럼 하나님이 때가 되면 쓰시려고 준비해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