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갈라디아서강해]#4. 1:18-24. "이것이 나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유대교를 신봉하다가 이런 복음 전도자로 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좀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 과연 예수님의 원래 제자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또한 자신은 과연 예수의 사도이며 그의 증거를 참으로 그리스도의 진실한 대언자로서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계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또한 “이것이 나다”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즉 자신은 예루살렘 사도들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 18-20,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바울이 회심 이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독립’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베드로,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만나지 않았다는 것과 십오 일 동안 머물렀다고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사도들의 수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그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동안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는 기독교 운동 전체의 중심 리더로 부상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또한 바울에게 자신들의 지도를 따르는 이류 사도가 되라고 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바로 자신은 독립적 존재였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지방에 복음을 전하고 난 후에 갈라디아 지방에 온 다른 전도자들은 바울은 단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사도들의 수하에 불과하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순회 설교 팀의 후발 주자일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을 평가하기를 “그는 별로 믿을 만한 인물도 못 된다. 그는 ‘선임’ 사도들에게 받은 메시지를 왜곡하여 비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변질시켰다”라고 말하면서 바울 대신 자신들의 말을 들으라고 전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유대의 사도, 선임자, 예수를 직접 만난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복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반격이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것이 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21-24 “그 후 애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바울은 지금 제1차 예루살렘 방문과 제3차 방문사이의 14년 동안에 행해진 선교 활동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수리아는 팔레스타인의 북부지역으로 수도인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가리키며,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 지대로서 그 중심부에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가 있었습니다.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의 전도는 그의 사도적 활동이 예루살렘과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전도여행은 바나바와 같이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되었기 때문입니다(행 11:24-26). 그러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의 여러 교회들이 자신의 얼굴은 알지 못하나 자신의 소문, 즉 “전에는 박해하던 자가 전에는 멸하려던 그 믿음을 전한다 함을”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의 사역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바울 다음에 온 갈라디아 순회전도자들은 바울을 비방했을까? 바울이 전한 복음이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메시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데 섞여 구성된 한 가족을 창조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행한 복음 선포는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말한 복음은 예루살렘 사도들이 말한 것과 전혀 다른 두 가지 메시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바울에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갈라디아에서 바울이 교회의 통일성에 기여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독립성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 예루살렘의 권위를 등에 업고 갈라디아에 도착한 말썽꾼들이야말로 만사를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결정타를 날렸던 것입니다. 유대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0 년의 교회사를 보면 끊임없는 분쟁의 역사입니다. 그 분쟁이 심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 즉 교인들이 죽은 전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은 분쟁 속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초대 교회 또한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제시한 해결 방법을 알면 그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명을 자신들의 민족 안에서만 국한되게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 또한 잘 이행하지 못하고 결국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아들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마 5:16).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버림을 받을까? 이 시간 나는 과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