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0. 7:11-16. "바울의 자랑"

이헌교 2024. 5. 31. 10:51

 

본문은 디도가 고린도에서 돌아와서,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과 마찬가지로 다시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즉 자신이 디도에게 했던 자랑이 입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위안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몇 주 혹은 몇 달 안에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몰랐지만 바울은 거짓 위안을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참된 위안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에서 그것을 기대하며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진리, 하나님의 진리, 복음의 진리,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서 성령께서 성취하고 계신 그 일의 진리 안에서 찾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울이 지금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신의 편지가 그들 안에서 불러일으킨 감정과 행동의 폭넓은 변화를 기뻐하면서, 그는 지금 그들이 자신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확실히 해 두려고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 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얼마나 큰 축복을 가져다 주었는가를 7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열거한 것들이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의 죄인지 아니면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 범한 죄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지만 편지를 받은 교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적대하는 자들에 동조하고 방관한 것과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진 것에 대해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 더 이상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12-13,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본문에서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울의 사도적에 반대하고 명예를 손상시킨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책망의 편지를 써 보낸 것은 그런 자들을 벌하거나 불의를 당한 바울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로 말미암아 오해하고 있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교인들의 진실된 열성이 하나님 앞에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디도로 통해 전해듣고 자신의 기쁨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상당히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감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깊이 받아. 그들의 사고와 상상력이 주변의 지배 문화와 그 기준으로 후퇴하고, 복음이 마땅히 열매 맺어야 할 그리스도를 닮은 삶의 방식에서 이탈한 데서 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한 신의에 있어서도 갈팡질팡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정말 바울을 불쾌하게 했는가? 그가 다시 돌아와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품고, 자신들을 사랑하고, 자신들을 돌보아 줄 것인가? 라는 염려에 바울은 자신은 큰 위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주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7:14-16,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이 참되게 되었도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바울은 디도를 고린도로 보내면서 교인들에 대해 자랑했었는데, 만일 디도의 임무가 실패로 돌아갔다면 바울의 자랑은 거짓되는 것이 되고 그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디도는 고린도에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꺼렸던 것 같습니다(고전 16:10-11). 그런데 그의 염려와는 달리 고린도 교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맞아들였고 매우 열심히 바울이 가르친 교훈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고 디도는 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더하게 되었고 바울 자신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았지만(7:6)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2장에서 했듯이, 애당초 문제를 야기 했던 징계 문제와 관련해서 그들이 적절하게 행동했다는 확신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이 편지는 돌고 돌아 평정 상태에 도달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죽으심을 여러 모양으로 구현하는 고통과 슬픔, 두려움과 염려를 경험했습니다(4:10-12). 이제 바울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고린도까지 가서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온 디도의 수고 덕분에, 그는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께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고린도 교인들과 바울의 관계는 마땅히 있어야 할 지점으로 돌아갔고, 바울은 그들에게 부과해야 할 과업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뢰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바울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범사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따라가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