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3. 1:15-22. "하나님 약속의 성취"

이헌교 2024. 5. 7. 15:46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자신의 거룩성과 성실성에 대해 언급한 다음 고린도 방문 계획이 변경된 것에 대해 변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중에는 저렇게 말하는 듯 보이는 전갈을 받고 마음이 상한 것 같습니다. 에베소에서 고린도까지 해로로 가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서쪽 방향으로 약 400킬로미터 거리였다고 합니다. 이 해로는 무역상들이 늘 여행하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고린도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5-16,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본래 바울은 고린도를 다시 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곧장 고린도로 건너가 육로를 이용해 북쪽으로 마게도냐로, 즉 데살로니가와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그 뒤에 한 번 더 유대를 향해 떠나기 전에 고린도로 다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어떤 일이 일어났고 지금 그는 어게해 북쪽을 둘러가는 육로를 통해 먼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로 여행은 보퉁 해로 여행에 비해 훨씬 느리고, 훨씬 위혐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계획 변경에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지라도, 고린도교인들은 그가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고, 혹시 의도적으로 자신의 의중과 엇갈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즉 한쪽으로는 ‘예,예’‘예, 예’라고 말하고 다른 쪽으로는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1:17-19 “이렇게 계획할 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오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로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하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바울은 자신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복음에 근거하여 살았고, 기도했고, 계획했다고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의 핵심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복음을 통해 백성들에게 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하신 모든 약속에 대한 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천 년 이상 이 약속에 근거하여 살면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그들을 앞으로 이끄시고, 마지막에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 생애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틀림없이 그렇게 하셨다는 믿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의 절정이요 모든 이스라엘의 희망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모든 약속의 성취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라고 말씀하셨고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큰 소리로 말씀하셨기에 이제 그 소리가 복음이 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히브리어로 아멘에 해당되는 말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누군가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기도에 공감을 표명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 혹은 동의한다혹은 나도 하고 싶었던 말이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아멘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기도를 마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끝나는 것이 바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시작된 전통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즉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를 통해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셨다면,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께 기도하면서 무엇을 구하는 합당한 방법은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시아의 제자이고 그분에게 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배우고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하여 그분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대표하고, 자기 안에 그들을 압축하여, 자기에게 해당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해당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굳세어져서 메시아와 연합해야 하고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가 그 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메시아가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란 뜻이듯이, 하나님은 메시아 백성에게도 자신의 성령을 주심으로써 기름 부어 주셨다고”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바울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기름 부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이 왕이나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 지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다른 데서, 자기는 그리스도인들을 메시아 예수의 형제자매로 여긴다고 하는 말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도장을 찍어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촛농을 녹여 편지를 봉인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성령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도장을 찍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도장은 메시아 자신의 표지인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장차 올 것의 젓 보증금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영으로 기름 부으실 때, 이것은 부활 때에 완성될 선물의 첫 부분이라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희망이 예수님 자신의 부활에 기반을 둔다면, 이 희망은 하나님이 영으로 주심으로써 우리 안에서 진정한 자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과 자신의 여행, 그리고 자신의 임박한 방문을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라고 있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복음과 성령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위대한 라는 빛 아래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의 아래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