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데살로니가강해]#10. 4:1-8. "거룩하라"
인 인간의 본성이 지난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본 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신생 교회가 직면한 실제 문제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성, 돈, 죽음입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주제는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가르침은 명확하고도 근본적인 것입니다. 모든 가르침은 다시 세 가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로 주의 명령,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능력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삼위일체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사와 자신의 사역에 대한 변호와 회고를 끝내고 이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디모데의 보고를 듣고 교훈이 필요하다고 생각된 부분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도덕적 교훈(4:1-12), 종말적 교훈(4:13-5:11). 일반적 교훈(5:12-24)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도덕적 교훈 중에서 순종과 성적 부분을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4: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그들의 일상생활을 안내할 기본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해 준 원칙들은 모든 교회에 공통되는 근본적인 지침의 일부인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철저하게 그렇게 행하도록 그들을 격려하며 돕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하나님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점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우리는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형상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진정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특히 몸을 사용하는 면에서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나타내는 단어는 ‘거룩함’입니다.
4:3-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사람들은 흔히 거룩함을 소극적인 특징, 즉 도덕적 오류가 없는 상태로 간주해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거룩함은 적극적인 것으로, 우리가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울 때 사람의 성품에서 드러나는 밝은 빛입니다. 바울에게 거룩함이란 예루살렘 성전과 연결된 일련의 사상이 그 토대가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기 위해 성전에 간다면 거룩함은 필수 사항일 것입니다. 즉 특별한 정결 의식이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완전히 성결한 상태로 살아 계신 하나님, 절대적으로 또한 궁극적으로 거룩하신 분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내주 하신다는 것입니다(롬 8:9). 개인과 공동체로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새로운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고전 3:17, 6:19). 그러므로 그들은 마치 예루살렘 성전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것처럼 삶의 구석구석이 모두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관련하여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가 성(sex)의 영역일 것입니다. 성이란 지혜로운 창조주가 주신 좋은 선물입니다. 좋은 선물이 모두 그렇듯이 어떤 목적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만족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세상에서 성욕처럼 강한 욕망을 길들이고 훈련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현관문만 나서면 만나는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 절제 없는 자기만족의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최근까지도 그들은 그런 세상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방 신전들은 정기적으로 사창가 역할을 겸했고, 사회 전반적으로 온갖 형태의 성적 행위가, 적극 권장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묵인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생활 방식은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막대한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분명한 가르침은 첫째 음란은 금지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결혼 관계 밖에서 행하는 모든 성적 행위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시대에 이 용어는 특히 이방 신전에서 행하는 종교적 성매매를 가리킵니다(물론 그것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결혼 관계 안에서의 절제입니다 새로운 상대나 새로운 쾌락을 찾는 광기로 이어지는 길들지 않은 거친 욕망은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4,5절). 셋째, 서로에 대한 부정행위도 금지 사항입니다. 6절 상반절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교묘하게 가로채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넷째, 이런 가르침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일 뿐만 아니라 주의 심판으로 뒷받침될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6 절하). 이런 기본 법령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판결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4:7-8,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본문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목적입니다(엡 1:4). 품위 있는 성행위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결혼 관계에서든 독신 생활에서든 품위 있는 성은, 난봉꾼이나 생각 없이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풍성한 삶으로 이어지는 길을 보여 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하나님, 이방인들이 알지 못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습니다(창 1:27). 하나님은 그 형상이 지금 성령께서 역사하여 열매 맺게 하는 거룩함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시고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삶에서 성령의 거룩한 열매가 맺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