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강해

[읽기 쉬운 데살로니가강해]#13. 5:1-11. "재림의 때"

이헌교 2024. 4. 17. 12:32

 

앞장에서는 이미 죽은 자와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주님의 재림 때에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해 주로 언급하였고(4:13-18), 본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한 문제와 재림을 맞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에 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깨어 있으라는 경고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 경고에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생각나게 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권고하셨습니다(막 14:34). 예수님은 다가오는 사건들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는 강도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43, 눅 12:39). 바울은 지금 같은 메시지를 다른 상황에 있는 청중에게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예수님이 20년 앞서 말씀하고 행하셨던 바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5:1-3,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그 당시 재림의 때와 시기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져왔지만(눅 21:7-8, 행 1:6-7) 미래에 일어나게 될 일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의 날”은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의 날”로 사용되고 있으며(사 2:12, 렘 30:7) 심판의 두려운 날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여호와 곧 주님을 예수님으로 바꾸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로 삼았으며 이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고 성도의 부활과 만민의 심판, 만물의 회복,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재림의 시기는 마치 임산부가 어느 순간에 극심한 해산의 고통이 찾아오는 것처럼(사 13:8, 렘 4:31) 사람들이 “평화롭고 안전하다. 만사형통이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말하지만 바울은 만사형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느닷없는 재난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침입해 들어와 신적 심판과 자비의 빛을 어두운 세상 구석구석에 비추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해당될 것입니다. ‘평화와 안전’이라는 강령은 로마 제국의 위안용 어구 중 하나라고 합니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 주변 주민들에게, 바울 시대보다 50여 년 전에 확립된 저 유명한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가 별 탈 없이 유지되고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이 강령을 사용한 것입니다. 바울이 정말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황제의 신전을 신뢰하지 말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세상이 격동의 길로 접어들면서 사방에서 공포와 파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는 이 편지를 쓰고 나서 20년이 지나 현실이 되었습니다.

 5:4-6,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라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하나님은 빛이시고(요일 1:5) 예수님은 참 빛이시므로(요 1:9) 그리스도인은 빛의 아들들(눅 16:8, 요 12:36)이요 이 빛의 지배를 받고 빛 가운데서 행하며 살아가는 낮의 아들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둑같이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도둑 비유는 깨어 있으라는 명령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깨어 있으라는 바울의 취지는 도둑의 위험성보다는 옛 시대, 어둠과 죄, 죽음의 시대 그리고 새 시대, 빛과 생명, 희망의 시대 사이의 아주 중대한 차이점과 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혀 다른 두 가지 개념을 결합합니다. 하나는 장차 일어나게 될 두려운 일 때문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곧 날이 밝아 밤의 습관을 벗어던져야 할 때가 될 것이기 때문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5:7-8,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본문이 핵심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낮의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성령은 세상은 밤이지만 당신들은 이미 낮의 자녀요 빛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슬프고, 졸리고, 술 취하고 이미 죽은 옛 세상 속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선물의 의미인 것입니다. 즉 새로운 세상의 삶이 옛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새벽이 밝아 오고 있고, 진통이 세상 위에 임하고 있으며, 언제든 도둑이 침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에베소서 6:10-20 본문의 짧은 변형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두 가지 주요 방어 무기인 가슴막이 갑옷과 투구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5:9-11,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바울은 이 편지를 믿음, 희망, 사랑의 삼중주로 시작했는데(1:3), 이제 결론을 향해 가면서 다시 이 셋을 끌어오고 있습니다. 믿음과 희망은 앞에서 오는 공격을 막아 내는 갑옷입니다. 구원의 희망은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입니다. 바울의 편지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이 모든 것 아래에서 우리는 메시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행위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 고백을 다시 듣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두운 세상이 빛의 자녀들을 향해 던지는 모든 공격을 막아 주는 보호막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우리도 서로 이런 사실을 상기시켜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격동이 일어나는 세상, 장차 마지막 여명이 밝아 올 세상을 대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날의 자녀들인 우리는 이미 메시아께 속해 있습니다. 먼저 즉은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10절).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 메시지에 대한 믿음을 굳게 붙들어라 그러면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위로와 힘을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이 시간 나는 과연 복음에서 무엇을 찾았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