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강해

[읽기 쉬운 데살로니가강해]#20. 살후 3:1-5. "기도의 요청"

이헌교 2024. 4. 26. 15:25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사이의 공통점은 종말론과 실제적 교훈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바울은 그릇된 종말 사상을 올바르게 잡기 위해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여러 교훈들을 2장에서 다루고 난 후 3장에서는 마지막 날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권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앞부분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기도하는 내용을 말한 뒤에, 바울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그들에게 요청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의 요청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주의 말씀이 ‘내달려 영광스럽게 되는’것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좋은 소식,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주의 말씀”, 즉 주에게서 온(from) 말씀이요, 주에 관한(about)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이 "내달리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자유롭게 나아가 그들을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백성으로 바꾸고 변화시키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이런 바울은 말씀이 역사하도록 애쓰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한 힘에 붙들려 다른 사람들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울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편지를 쓰기 직전에 아테네에서 그가 겪은 경험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행 17:16-21)

 그러면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고 주의 말씀이 마음껏 ‘내달려 영광스럽게 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의 사역에 진척이 있으려면 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아주 의아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엄청난 일을 많이 행하였습니다. 성령을 통해 기도를 불러일으키고 사랑 가운데서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마지막에 우리 각자가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날 때 명확해질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을 앞당기고 지탱한 사람들은, 넓은 세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위해 사랑과 헌신 속에서 신실하게 기도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3:1-2,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바울은 효과적인 복음 선포만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악한 사람들의 올무를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발은 현실을 딛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기쁜 나머지, 어디를 가든 자기 발자국을 뒤쫓는 적대감과 예리한 악을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복음을 전하며 복음대로 살아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이 말의 의미를 너무나 잘 이해할 것입니다. 어둠으로 인해 악이 소리 없이 번성하는 곳에 하나님의 빛이 비칠 때, 그 빛으로 사람들은 긴장하고, 그다음에는 분노하며, 그다음에는 사악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사람이 복음을 믿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복음을 듣기는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온갖 계략과 폭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맞서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에 그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비는 기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3-5,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바울은 복음 선포와 기도 사역 뒤에는 언제나 주께서 친히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신실하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이 있습니다. 주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그렇게 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기도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 이런 말은 늘 논리에 맞지 않게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에 논리를 초월하는 능력과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인생은 살아 계신 주의 처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주는 지금도 주권자이십니다. 하지만 주는 교회를 강하게 붙들고 교회를 악에서 보호하는 주의 사역에 우리가 협력하기를 갈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계속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있습니다. 몆 달 전만 해도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방식대로 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미덥지 않아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과 삶의 뿌리를 사람이 주는 곤경이나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문제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메시아의 인내에 두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생각의 초점을 계속 예수님께 맞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내를 생각하며 고난 속에서 주시는 힘을 묵상하며 기도하면 그런 인내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 주위를 둘러싸서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기도와 묵상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바울이 말하는 기도와 묵상을 잘 실행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