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디모데전서강해]#13. 5:1-8. "목회자의 기본자세"
앞장에서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를 논한 바울은 교회에서 신분과 연령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참된 목회자는 개인의 진가를 인정해야 하며 그들의 나이나 성별, 신분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시며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전해져야 하지만 각 연령층에 있는 성도들을 다양한 태도로 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도행전 2:43-47에서 묘사된 예루살렘 교회의 놀라운 생활을,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즉 반복되지 못한 일종의 초기 실험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는 바울이 사람들에게 재산을 팔아 공유하라고 말하는 것을 성경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군데에서 서로 보살피라는 명령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위로의 말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물질적 재정적으로 도와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특히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 복지 제도가 전혀 없던 세상에서 교회는 아주 초기부터,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스스로 살아갈 수단이 없는 이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았다고 합니다. 특히 과부들이 그러했다고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보통 극빈층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되면, 가족들이 의절을 해 버리곤 해서, 친척들의 지원도 모두 끊겼다고 합니다. 이에 교회는 대안 가족으로 살아가야 했고, 삶을 나누는 즐거움과 상호 지원의 가능성은 물론 그로 인한 긴장과 어려움들을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했다고 합니다.
5:1-2,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목회자에게 주어진 권력을 온화함과 지혜로 이용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옳지 않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매우 어렵고, 또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거나, 아주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심하게 다루고 싶은 유혹을 자주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가서 뭔가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보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라면,, 당신의 동생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해 보라고 권면합니다. 여자들의 경우도 동일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즉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대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에게 대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깨끗함“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적 관계에서의 친밀함이 성적 끌림으로 이어질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바울이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 점에서 고지식할 정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실패하면 추문과 큰 슬픔을 일으킬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3-4,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과부들이 오늘날 보다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일부다처로 많은 아내를 거느리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한 아내만 택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다른 아내들을 버리게 되거나 남성 위주의 결혼 관습 때문에 쉽게 아내를 내보내는 것 등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금욕주의의 영향을 받아 독신을 강조하며 재혼하지 않음으로써 과부들의 수가 많아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잦은 전쟁이나 과도한 노동 등으로 남자들이 일찍 죽었던 것도 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과부들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 나그네와 고아들과 함께 특별히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하나님의 자비의 대상이었습니다(신 10:18, 행 6:1-7). 바울은 본문에서 참 과부의 조건에 대해 말합니다. 즉 가족이나 의지할 곳이 전혀 없고 반드시 도와주어야 할 과부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돌보아 줄 아들이나 손자가 없고 홀로 남아 의지할 곳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8절에서 이점에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즉 가족이 과부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부들 중에는 젊은 과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의 지원도 받고 가족에게도 도움을 받아 게으르게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결국 사람들을 게으르게 이르게 한다면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5:6-7,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의지할 곳이 없는 참과부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두어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과부에 대한 내적 기준은 과부 자신의 경건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안나처럼 성전에서 오랜 세월 동안 기도하며 섬겼던 삶을 살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그러한 경건한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향락을 좇는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즐거움을 좇는 자는 참 과부가 아니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도와야 하는 참 과부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이 없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경건을 추구하는 과부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들에게 무서운 책망의 말을 합니다(8절).
오늘 본문은 1세기만큼이나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주는 핵심적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백성 전체의 가족과 우리 자신의 가정에서의 책임을 조화롭게 잘 감당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 있는 지침 안에서 상상력과 융통성을 잘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고 싶은 권력과 성과 돈의 남용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