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디모데전서강해]#16. 6:1-5. "상전과 종의 관계"
오늘 본문은 종과 주인과의 건전한 가르침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우선 그 당시 노예 문화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노예 제도가 흔한 사회 환경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에는 약 6,000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가 되는 경우는 전쟁 포로가 된 경우도 있었고, 또한 빚을 갚지 못하여 노예가 된 경우도 있었고 자기 부모가 노예면 자식도 노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노예는 오늘날 냉장고와 세탁기나 TVTV 같은 가전제품과 같은 용도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예가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웬만한 가정에서는 몇 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노예 제도를 명령한 적은 없지만, 노예 제도를 허용하고 규제했다고 합니다. 예수, 바울 그리고 신약성경의 다른 사람들은 노예 제도에 대항하는 폭력적인 혁명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6: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은 가르치고 권하라”당시 노예는 주인 맘대로 사고팔거나 죽이기까지 할 수 있었고, 로마의 모든 사무나 노동 심지어 자녀 교육까지 노예들의 몫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주인과 종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노예 문제는 로마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의 문제도 되었던 것입니다. 주인과 종이 똑같이 신자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 한쪽만이 신자일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누구든지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평등사상을 강조하였지만 단지 당시 사회제도로 고착되어 있는 종의 제도 아래에서 믿는 자로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은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신분이며, 이 땅에서는 세상의 질서와 제도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란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 신자가 된 종이 때로 주인에게 반항하고 존경하지 않는 일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마치 그리스도인이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복음 전파에 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바울은 경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처럼, 소규모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무의미하게 화를 돋우고 분열을 일으키는 행동을 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를, 또 그리스도인 종들이 그리스도인 주인과의 낮선 새로운 관계에서 지혜롭게 서로 존중하며 일하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3-5,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초대교회 당시 각종 이교문화가 들끓고 영지주의 사상이 휩쓸고 있는 위기적인 상항 속에서 올바른 신앙과 정통적인 교리를 정결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른 교훈”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가르침을 예언과 환상, 그리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상한 영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우는 복잡하고 섬세한 일을 위한 지침들은 사람들에게 건전하고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몇 사람, 교만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몇 사람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종종 특정 단어들의 의미에 대한 언쟁과 다툼을 이끌어내곤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학자들이 고대 문헌에 대해 토론해야 하는 것을 초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즐겨하는 무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말다툼이 일상이 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모두 자신들을 앞지른다고 생각하여 공동체는 여러 파당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린도교회처럼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로 나뉜 것처럼 공동체는 분열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짓 교사들은 경건의 능력을 입증하고 경건을 실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이름이 지닌 권능을 이용하여 마치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처럼 사업을 번창시키고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는 등의 세속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른 탐욕이 그들의 기본적인 동기이며 원인이었다는 것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일부 고대 철하자들과 다른 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전역에 새로운 종교를 팔러 다니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많은 직업군에서 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다단계가 교회에 침투하여 목회자부터 전 교인이 연루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지식이나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그들에게 이교도의 주인을 경멸하거나 합법적이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그들의 결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할 어떤 권리를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주인과 함께 사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은 종교적 특권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이유로 합당한 존경과 경외를 경시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 때문에 그리고 그분의 값없는 구원에 참여하는 자로서 더 많은 근면과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외에는 어떤 말에도 유혹을 당하지 말아야 하며 시기, 다툼, 비방, 악한 추측, 등 모든 교묘하고 건전하지 않는 논쟁을 일으키는 것에도 유혹당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이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