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강해

[읽기 쉬운 디모데후서강해]#1. 1:1-7. "예수의 사도"

이헌교 2025. 1. 9. 12:06

 

 

본서는 바울이 다시 로마의 감옥에 수감되어 그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쓴 바울의 마지막 서신이라고 합니다(67년쯤).(67년 쯤).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이 편지는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중요한 주제는 핍박 가운데서 믿음과 사역을 충실히 지키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서론적이며,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난도 겪을 각오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 편지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젊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했습니다(딤전 4:12). 또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디모데를 애송이나 아랫사람으로 여기지 말하고 권고합니다(고전 16:10-11). 지금 그는 디모데에게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영의 사역을 하도록 그를 준비시키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영은 두려움이나 소심함의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불멸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려면 어떤 자질을 지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서신과 마찬가지로 인사말로 서신을 시작합니다.

 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본절은 그의 다른 서신들과 같으며, 그는 자신의 야망이나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약속대로“란 말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 있는 인사말과 비교해 볼 때 독특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로마에서 다시 감옥에 갇혔고 처형을 당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딤후 4:6). 그러므로 이 생명의 약속은 바울에게 특히 소중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지만, 바울의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언급된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다시 로마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힐 때까지 몇 년 더 자유를 누렸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두 번째 로마 감옥에서 투옥 생활을 하면서 이 편지를 썼고, 이 편지를 쓴 직후 그는 네로의 명령에 따라 로마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이 마지막이란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모데후서는 우리가 바울이 보낸 마지막 편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곧 곧 처형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긴박감과 열정의 기록일 것입니다. 바울은 본절에서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그 당시 문화에서 아들들이 아버지 옆에서 일하며,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며 아버지의 도제가 되어 배우던 세상에서 그들이 그렇게 가까웠기 때문에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심정이 묻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5,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감옥에 갇힌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는 언제나 바울의 머리와 가슴속에 있었으며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신앙은 구약 신앙에 굳게 근거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11:13-24). 바울이 디모데에게 확신을 가지고 목회를 하라고 권할 수 있는 것 또한 믿음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앙은 그의 어린 시절에 영향을 미친,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증언과 모범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에서 디모데를 만났을 때 디모데가 이미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으로 보아 로이스와 유니게는 아주 초창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16:1), 이 모든 것이 바울로 하여금 자신이 마지막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게 했을 것입니다.

 1:6-7,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본절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디모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가 중단되거나 소멸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도와 목회 사역에 대한 열심히 조금 식어진 것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디모데게에게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우선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은 권력과 비슷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유명한 경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인간관계에 불가피하며 꼭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누군가는 약자와 연약한 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또한 누군가는 복잡한 사회의 공동생활을 규제해야 합니다. 이는 세상에서만큼 교회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들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든, 그리스도인에게든 무정부 상태는 사람들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 권세가들에게 세상에 질서와 조하를 부여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는 능력을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따르고 싶도록 인도하는 능력,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지혜의 말을 하는 능력, 가장 필요한 곳에 치유와 희망을 가져오는 능력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목회자들이 꿈꾸는 능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능력은 악마적이지는 않더라도 파괴적입니다. 능력 없는 사랑은 미온적인 감상주의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관대하고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산다고 인식되고 알려진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인도를 따르려 하고,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려 할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주셨다는 사실에서 흘러나오고, 우리는 이 때문에 사랑과 충성으로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사역사들의 사역에는 동일한 능력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과 능력을 부어 주시는 영은 또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에게 분별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은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분명하고 빈틈없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그들 자신의 삶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즉 자신의 삶에서 절제와 자기 훈련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도들이 사역자를 본받아 하나님의 공동체의 삶에서 본받을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든지 능력과 사랑은 물론 분별력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를 인도할 때는 물론 개인의 삶에서도 자신들이 취한 태도와 결정을 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사랑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