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강해

[읽기 쉬운 디모데후서강해]#11. 4:6-8. "의의 면류관"

이헌교 2025. 1. 24. 17:04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신앙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디모데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상하신다라는 개념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선물이나 아니면 돈을 주는 것과 같은 신적인 무엇을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예배하고 순종하려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의 여정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살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어쨌든 자신들에게 잘해 달라고 하나님께 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정한 예배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생각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사람들이 얼마나 갈피를 못 잡든 그들을 환영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대하는 보상에 대해 말할 때 염두에 둔 것은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특히 믿음에 의한 칭의교리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우리의 선행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단락들에서 그는 현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 모습에 대해 말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미래나 최후의 심판, 다가올 주의 날에 대해 말할 때는 언제나, 우리의 믿음만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와 관련지어 말합니다(2::1-16). 바울은 물론 그러한 삶 전체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그가 수고해 얻은 결과가 아니라 성령이 자신 안에서 일하심으로 그가 이룬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가 고린도전서 15:10과 골로새서 1:19에서 말하는 바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랑의 논리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논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지시고 그 힘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계시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힘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도록 부름 받고, 요구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적절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돈이나 보석 같은 임의적인 선물이 아니라, 그 수고에 부합하는 하나님의 새 세상에서의 영광과 영예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이란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4:6-7,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바울은 자신의 피가 제사 때 사용되는 술, 이 술은 희생 제사가 끝날 때 마지막 의식으로 제물을 위해 붓는 술처럼(15:1-10), 이미 부어짐으로써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여겼으며 기꺼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순교의 제단에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12:2, 2:17). 그가 부어 드리는 제사에 드릴 그 희생제물은, 그가 세운 교회와 예배와 믿음일 것입니다. 즉 자신은 그리스도와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30년 동안 사도로 활동한 자신의 지나온 발자취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 헬라와 로마 시대에 많이 행해졌던 권투나 레슬링 같이 치열한 경기를 예로 듭니다. 물론 이 표현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에 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6:10). 그만큼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치열하고도 절박한 것이었다고 디모데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길을 다 달려왔고 지금은 결승점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준비된 것은 바로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바울은 면류관과 주께서 직접 그것을 자신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다시 이미지를 바꾸어 법정으로 갑니다. 주는 유일하신 공정하고 의로우신 재판장, 반드시 옳은 판결을 내놓는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법정에서 그의 무죄를 입증하실 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재판관들과 대조되는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재판관들 중 최고로 여기는 로마 황제를 포함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왕으로 나타나실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황제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익숙할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은 황제를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며, 황제가 곧 자신들 앞에 나타나니라는 것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그의 통치를 분하게 여기고,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만이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접하는“모든 사람이 그 일이 일어나는 마지막 날에 보상을 받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어드리는 제물처럼 부어지는 한편, 경기에서 이기고, 결국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받고, 그래서 도착할 진정한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마지막 날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