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강해

[읽기 쉬운 디모데후서강해]#7. 2:20-26.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이헌교 2025. 1. 17. 17:00

 

오늘 본문은 하나님에게 귀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바울과 다른 초기 교사들의 생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본을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면에서 적용하고자 합니다.. 첫째, 그는 디모데에게 그저 쳇바퀴 돌 듯 반복되며 모든 사람의 화를 돋우고 짜증을 유발하는 논쟁을 피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런 대화는 시작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입니다. 논쟁을 피하는 것은 약한 모습이 아닙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우리가 다투려 하지 않으면 약하다고 말하겠지만 이것은 지혜인 것입니다. 둘째 그는 디모데를 향해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라고 권면합니다. 온유하게 대하기가 쉬운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것과 온화한 영으로 반대자들을 다독이는 모습은, 그 교사가 예수님의 본을 배우고 있으며, 그분의 영이 주시는 능력을 받았다는 분명한 표지란 것입니다. 셋째, 그는 디모데에게 결국 하나님이 최고의 목회자이심을 상기시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바울은 본절에서 집에 있는 물건과 관련하여 같은 종류지만 서로 다른 두 가지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금 그릇과 은 그릇같은 귀한 것은 특별한 경우에 쓰려고 보관해 두게 됩니다. 그러나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 같은 그릇들은 일상적인 용도에 쓰임을 받는 그릇인데 귀한 손님이 오면 보이지 않는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무 그릇이나 질 그릇은 천하게 쓰임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릇을 비유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바울의 요점을 확장해 그 개념을 사람에게 적용할 때에는, 이는 단지 기술이거나 은사를 갖지 못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거나 더럽히고,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며,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고결하게 사용해야 할 물건들, 즉 그들의 자아. 그들의 몸을 취하여, 수치를 불러올 요량으로 사용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이 스스로 더럽히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한 가지는 간음입니다. 이는육체적, 정서적 만족의 욕구가 하나님의 위대한 한 가지 선물을 격하시키고 평가절하하는 행동 양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분노아 쓰라림입니다. 이는 동기가 완벽하게 정당하다 하더라도 설득하려 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더 나아가 소외시키는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호의 없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바울은 앞의 두 가지 피할 것에서 간음에 대해서는 길게 분석하지 않고 디모데에게 멀리하라고 권면합니다. 특히 청년기에 유혹이 강한 성적 방종으로 있는 것은 무엇이든 피하고, 대신 정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두 번째 조심해야 할 분노에 대해 말합니다.

 2:23-24,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특히 젊은 교역자는 분노에 대해서 배우기 어려운 교훈일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목회자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몇 년을 공부하고 훈련하고 마침내 한 교구나 공동체에서 사역을 시작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가장 먼저 일어난 일 중 하나는, 목회자와 같은 훈련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그 주제에 대해 전혀 공부해 본 적도 없는, 목회자의 첫 설교를 듣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누군가가 목회자의 면전에서 목회자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목회자는 조목조목 신학적으로 또는 여러 가지 점에서 그 성도를 압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성도가 초라한 기분이 들게 할 수도 있고, 가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목회자는 목회적 돌봄의 가장 기본적인 교훈을 잊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절에서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교훈으로, 주의 종은 다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이 최고의 목회자이심을 이야기합니다.

 2:25-6,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우리의 사역을 통해서든 아니든, 사람들을 다루실 분은 하나님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이나 복음에 따르는 세세한 가르침의 사역에 반대하며, 화를 내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또 마귀가 놓은 덫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꼬투리를 잡고 사람들을 비난하는 고소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시고 그들을 회개와 바른 마음 상태로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목회 사역은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든 기꺼이 협력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분노를 대응하는 것 같은, 복음 자체의 토대를 부인하는 방법들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사역을 도울 수 없다고 디모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교훈을 익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한 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정말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려 한다면, 이는 꼭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일들은 종종 거의 모든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든 대중 앞에서 휼륭한 쇼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금 그릇이든, 은 그릇이든, 집주인을 기쁘게 하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역자를 가리는 진짜 시험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밝게 빛나는가의 여부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세상의 빛이 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