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10. 2:25-29. "내면의 할례"
오늘 본문 말씀은 유대인의 반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생활에 이어 그들의 무할례적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율법을 둘 다 소유했다는 증거로서 할례를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인 할례가 있지 아니한가?" 이러한 변론에 바울은 그의 논리를 단계적으로 전개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레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할례는 율법보다 더 오래된 것입니다. 율법은 그 법 제정자인 모세에게서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할례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기원이 됩니다. 온 이스라엘은 그 사람에게서 나왔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표증과 할례의 인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설사 실족하여 넘어졌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당신의 백성들과 당신의 권속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할례가 그 점을 입증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할례가 가치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할례 그 자체에는 고유한 가치나 어떤 본질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조건하에서만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하나의 '표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증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내면적인 것에 대한 외면적 표증입니다. 그 내면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에 합당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무할례자들과 같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바울은 이론적이고 가상적인 논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할례 받지 못한 사람이 율법의 의를 지킨다면, 할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아무런 차이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일 것입니다.
2: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사람으로 하여금 유대인 되게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떤 특별한 민족에 속해 있다는 것이나 외면적인 지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할례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육신 안에 있는 외면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내면의 사람에 속한 것이라는 증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외면적으로 그들을 돕기 위해서만 할례를 허락하셨지, 사실상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본문에서 말하는 이면적 유대인은 어쩌다 특별히 도덕적으로 노력하게 된 이방인이 아니라 영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적힌 하나님의 율법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된 이방인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의 예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메시아 예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언약을 갱신하셨으며 이제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거룩하고 훌륭한 단어인 '유대인'을 택하여, 하나님이 이방인의 마음속에 영으로 역사하셔서 율법의 참된 완성을 이루실 때, 비록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를 '유대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신명기 10:16에서도 나오는 말씀으로 바울은 정통 유대교의 언어로 언약 갱신을 말하면서, 언약 갱신이 하나님의 영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마음으로 할레를 받은 사람은 칭찬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외면적인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대단히 존경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위대한 선생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이처럼 사람들은 외모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내면적인 상태, 이 거룩, 이 진리, 하나님과의 관계, 바로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유대인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나간다는 사실에, 그리고 자기의 이름이 교회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에서 자기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할례를 의지하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성찬에 의지하여 자기는 견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것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구원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은 다만 도구이고 통로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성경에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을 것이다..."(요 3:16)라고 쓰여 있어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멸망치 않고 다 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춥니다. 그러나 만일 성령의 열매나 신적 생명의 어떤 열매를 찾아보지 아니하고 거기서 멈춘다면, 유대인들이 저지른 이 외식의 잘못을 똑같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성품, 새로운 마음, 성령께서 거하시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내면에 할례를 받은 '거듭난'그리스도인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