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15. 3:27-31. "오직 믿음의 법"

이헌교 2023. 10. 12. 12:14

 

본문 말씀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위대한 구원의 특성 내지 일련의 확정된 결론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새로운 어떤 일을 이루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의 길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것이 우리에게 미쳐지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율법인 토라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토라를 지키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기 위해 역사 가운데 행하실 때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미래에 누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지 현재 시점에서 식별하는 방법은 그들이 지금 당장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달고 있는 표, 곧 그들이 미래에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것이라는 현재의 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에 의한 칭의'교리입니다.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사람들을 미리 '확정하는', 곧 미래에 누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지를 현재 시점에서 생각하는 이런 문제는 늘 유대인에게 국한된 문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만이 토라를 소요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자랑'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율법의 성취는 믿음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에 의한 ‘칭의’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믿을 때, 마지막 날의 판결에 앞서 하나님이 그 판결이 어떨지를 선언하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언약 가족, 즉 죄를 용서받은 백성이자 진정한 아브라함의 백성이며 메시아 백성의 일원이라고 선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믿음의 의한 칭의'는 그것이 하나님이 거룩함에 무관심하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규칙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어떤 종류건 '믿음'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이 특별한 메시지를 믿고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현재 시점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어떤 공적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그러한 믿음이 결국에 가서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보다는, 사람이 이제 진실로 새로운 언약에 속할 수 있도록 복음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다는 확실한 표가 바로 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편지 뒷부분에서 말하는 것처럼, "믿음을 들음에서부터 나오고, 들음은 선포된 메시아의 말씀에서부터 나온다"(10:17)고 했습니다.

 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만일 이 믿음이 현재 시점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백성을 확정하는 유일한 표라면 그렇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아예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기준이 행위의 법이라면, 아무리 과소평가하더라도 유대인은 유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기초로 사람을 의롭다고 여긴다면, 유리할 입장 같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결론에 의의를 제기하는 누구에게나 다음과 같이 즉각 반박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유대인이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초로 그들이 언약에 속한 자들이라고 재확인해 주실 것입니다. 또 비유대인이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유대인과 동일한 믿음을 통하여 언약 가족 안으로 들어왔다고 확인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유대인에게 영원히 특권적 지위가 있다고 주장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자 유일신을 이용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신 6:4-5) 이 기도는 토라의 핵심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날마다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무할례자들도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고 선언하신다고 바울은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방편으로 해서 우리는 이제 율법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선한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해 율법을 지킬 수 있고, 존귀케 할 수 있고 완성할 수 있는 경건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세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제 일차적인 기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9:2)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전체 의도는 우리가 "마음과 뜻과 성품과 정성을 다 해 우리의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까지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성이나 행동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믿음을 기초로 하여 내 속에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 존귀케 하려는 욕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바울이 율법에 부정적 관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로마서를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이므로 폐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과거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곧 믿음을 통하여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믿음을 바탕으로 지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지만 성령의 역사함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성화'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 구원을 받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되면 우리들은 죄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구할 것은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나는 과연 믿음으로 의롭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