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22. 5:12-17. "아담의 죄"
하나님이 한 사람 메시아 예수 안에서 하신 일은, 단순히 인류가 죄가 오기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요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요점은 인류의 원죄 곧 죽음을 초래하고 진정한 인간성의 붕괴와 부패에 이르는 근본적 우상숭배에서 되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이 일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짧게 훑어 보았습니다(5:1-11). 그러므로 바울은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아담이 인류의 대표성에 대한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 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히 7:9)란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과 레위를 포함한 자기의 모든 자손들을 위해서 한꺼번에 십일조를 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이 범죄 하여 율법의 정죄와 그 벌 아래로 들어갔을 때 전 인류가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이 아담에게서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죄를 전 인류에게 전가시켰던 것입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고 그래서 우리 모두 죄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교리의 진수가 되는 구절입니다.
5:13-14,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으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아담과 모세사이에는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아담은 직접 명령을 받았지만 그것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그들은 그것마저 어겼다는 것입니다. 즉 아담과 모세 사이 율법이 없었을 때 조차도 인간은 계속 죄를 짓고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이 말은 바울이 궁극적으로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말입니다. 아담은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요, 예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우리의 관계 속에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으므로 각자는 언약적 머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과일을 먹지 말라 만약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만일 그가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면 그는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5:15-16,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니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아담과 우리의 연관은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죽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관은 약속된 결과에 즉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더욱'이란 말로써 사망과 생명 사이의 대조의 차이를 두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와 선물'은 대등한 수준에서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물인 죽음은 전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생명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은 죽음과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더욱 크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있었던 처지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 것보다 훨씬 그 이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17, "한 사람이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죄의 결과는 '죽음의 지배'였습니다. 죽음이 온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죽음의 권세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아담 안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식적으로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수 있다고 바울은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 곧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구원하시는 지배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통해 현재에도 적용이 되고 있다고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을 인내로 이겨내다보면 소망에 이를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의 권세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즉,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되어 죄에 더 이상 구속받지 않는 자라는 말입니다. 죄의 권세 아래 있을 때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즉, 자유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다만 성령님의 능력으로써만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날마다 우리들의 본성과 성령 하나님과의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구할 것은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아담의 후손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