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56. 13:1-7.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늘 본문은 바울이 다스리는 권위에 대해 논증하는 내용입니다. 오늘날에는 통치자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인간성을 말살하는 정부에 대해. 필요하다면 우리가 희생해서라도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를 집필할 당시에는 악명이 높았던 네로가 다스리던 1세기에 쓰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바울이 이것을 썼다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다른 누군가가 이 단락을 끼어 넣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에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설득력이 없을까를 한 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많은 권력자들은 본문을 남용하여 학대당하는 백성에게 아무 저항도 말고 침묵하라고 강요한 것을 우리들은 지나간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많은 본문이 그렇듯, 문맥을 무시하고 뽑아낸 구절들은 위험할 뿐 아리라 진실을 호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바로 앞 단락에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사적 앙갚음을 하지 말하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하나님이 악을 무시하신다거나 세상이 불량배와 실세들이 활개 치는 혼돈 상태에 빠지기를 원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독교 교훈을 어리석게 오해하는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기만 하면 이 세상과 관계를 끊어야 하고 국가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정부 권세를 부여받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개념은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친숙한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셨으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권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구약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3:3-4,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 당시 로마에서는 기독교인들을 인간쓰레기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알아야 본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기본적인 사회 구조에도 협력하지 않으려는 반체제 단체로 여겨진다면 복음의 대의에 유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세상의 참 주(Lord)로 믿기에,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 작은 주들(lords)과 불필요하게 다투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칼“은 관리들이 가진 권위를 상징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황제들이 지방 총독을 임명할 때 그 총독에게 단검을 줌으로써 그 기능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느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바울은 “양심을 인하여”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양심이 칼 때문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하는 권세들에 대한 예의를 가지고 있으니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훈이, 즉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권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구약성경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3:6-7,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그 당시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는 실로 혁명적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폭력 혁명이라는 일반적 유형을 선택한다면 제국과 다시금 제국의 방식으로 다투는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분명히 패배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도 패배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크고 작은 세상 권세가 존재하는 것은 한 분 참 하나님이 세상에 혼돈이 아니라 질서가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특정한 정부의 특정한 행동이 정당하다고 인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견제가 없을 경우 악이 번성하는 이 세상에서는, 일정형태의 정부가 늘 있어야 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세금에 대한 바울의 견해에는 당시 로마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수도에 사는 로마 백성은 직접세와 간접세 이렇게 두 종류의 세금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접세는 사람들이 아주 싫어해서 폭동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때 네로는 로마 백성에게 간접세를 모두 폐지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한 분이신 세상의 주로 믿던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을 이용하여 납세 거부를 합리화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동시대의 많은 이방인 역시 세금이 불의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런 태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가급적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바울은 특수한 유대 전통 안에 서 있으면서, 그것을 복음의 관점에서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방 국가와 그 통치자를 맹렬히 비난했지만, 가장 맹렬히 비난을 퍼부었던 예언자 가운데 일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장기적 유익을 위해 이방 국가와 그 통치자를 통해 일하신다고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이사야 10장, 45장, 에레미아 29장).
오늘날 우리들은 본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세계가 적절한 법으로 다스려지기 원하신다는 사실과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최고의 주로 이미 세워지셨다는 사실에 대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어떻게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 가를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