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58. 14:1-6. "믿음이 약한자들"

이헌교 2023. 12. 15. 10:59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 것은 바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 교리가 미치는 직접적 결과물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교리에 대해서는 이 편지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은 동등하게 환영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셨다(10:9-13)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민족 태생이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세운 벽을 무너뜨리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바울이 노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서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유대인이네 혹은 이방인이네” 하지 말고 같은 주인을 섬기는 종, 같은 주를 따르는 제자로 보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3,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바울 시대에는 식용으로 동물을 도살하는 것을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이건 곡식이건 식량 생산 수단과 아주 가깝게 살았으므로, 소나 돼지를 죽이는 것을 나무에서 올리브를 따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당시 일부 사람들 곧 본문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그들이 제대로 된 고기를 구하리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고린도전서 8장에서 당면한 문제와 비슷하지만, 아마도 더 복잡한 문제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가 문제였습니다. 이방 신전에서 희생 제물로 도살한 고기를 인근 식당에서 요리로 내거나 시장에서 판매했다고 합니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그런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실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유대인도 포함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는 성경에서 정하고 유대전통으로 해석된 율법에 따라 합당하게 도살한 고기를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믿음이 약한 자”라고 하여 이들이 경건하지 않고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창조자인신 하나님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그들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을 인정해 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우리들처럼 하나님이 받아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의 권속임을 알아야 하며 같은 지체로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14:5-6,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 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 당시 이방 사회도 특별한 축일과 휴일을 지켰을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유대인의 관습을 지켰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주요 절기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하면,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쪽으로 결정하든 중요한 것은 주를 위해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이 날은 안식일을 어느 날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주간의 첫날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1세기에 이 문제에 관하여 초대교회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때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6). 초대교회에서는 첫째 날에 그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1세기로부터 3세기에 이르는 동안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제7일을 지키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첫 번째 날을 지키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두 날을 다 지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본문에서 안식일 논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로마교회 안에서도 이 문제로 다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느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논쟁을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이처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자신을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따로 떼어놓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에게 우리 영혼의 상태를 생각할 기회를 주고, 예배와 찬양 속에서 하나님을 함께 만날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복음에 있어서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절대로 타협을 하면 안 되지만 비본질에 있었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사역자나 성도들 또한 본질인 복음보다는 자기들의 권리에 너무 집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들만이 진리이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과 틀린 것을 말하면 이단으로 정죄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복음에 있어서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