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27. 7:1-13. "정결법 논쟁"

이헌교 2023. 7. 25. 11:15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예수님이 정결법에 대한 논쟁을 하는 내용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에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선동하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온 이들도 혹시나 예수님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지 확인 차 들렀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구약에서 말하는 선지자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그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지지기반은 민중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민중들이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루살렘까지 소문이 났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에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확인 차 들렀을 것입니다.

 7: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마가복음의 첫 독자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유대인도 있었지만 이방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부정한 손”은 “씻지 않는 손”이란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결의식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언급된 떡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관습은 모세의 율법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제사장의 제의적 관례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7:3-4,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본문에서 괄호를 친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과 관례를 잘 모르는 이방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마가가 설명해 놓은 해설 구절입니다. 마가는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것은 유대교 전통 속에서 전승되어 온 것을 지키기 않아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200년 경 성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이 왜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느냐고 따지니(5절) 이에 예수님은 이사야를 인용하십니다.

 7:6-7,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를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셨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십니다(사 29:13). 본문에서 예수님이 “외식하는 자”라고 말한 헬라의 뜻은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무대에 서는 ‘연극배우’라는 뜻으로 속과 겉이 다른 이중인격자 또는 위선자란 의미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사실은 인간의 관습에 불과한 것을 근본 율법으로 가르침으로써 위선의 죄, 연기하는 죄를 짓는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라 자처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전통을 가르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고(8-9절) 이야기를 하시면서 모세가 명령한 부모 공경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7:10-12,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하나님이 주신 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유전에서는 이것을 복잡하게 바꾸었습니다. 즉 ‘고르반’이라고 해서 성전에 부모의 이름으로 물질을 바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이 전통이나 관습 명목으로 부모 부양의 의무를 피하는 경우를 예로 들으신 것입니다. 머리 좋은 회계사가 법의 허점을 찾아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나의 소유는 하나님께 속했다고 선언만 하면(고르반), 부모에 대한 의무를 면제하게 해 준다는 것은 정말로 위선이 아닐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부모에 대한 의무를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공식적으로 “하나님께 돈을 드렸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자신들이 존귀하게 여긴다고 하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너희들이 진짜 “외식하는 자”란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7:13, “너희의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논쟁했던 주제는 “누가 하나님을 대변하는가?”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스몬 왕조때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의제를 쌓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발전시킨 전통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로마에 대한 반란을 지지하도록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정결법을 적용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경주의 바리새인들이 즉, 샴마이 학파들이 받아들이라고 촉구하는 ‘전통’을 끝까지 따른다면 그 종착점은 로마에 대한 투쟁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성경’이라는 추상 관념을 또 다른 추상 관념인 ‘전통’에 맞서 지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통해 바리새인들의 기반에 도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정말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 즉 치유, 소외된 사람들과의 잔치, 어둠의 나라를 밀어내는 일로 임한다면, 바리새인들이 쌓은 여러 겹의 전통이 오랫동안 지시해 온 길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성경의 성취하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길을 가면 성경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통이 성경에 기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통 때문에 오리혀 성경이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성경을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영적분별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분별력의 헬라어의 의미는 “지혜롭고 논리적”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 나의 영적분별력은 어떠한지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