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33. 8:22-30. "베드로의 고백"

이헌교 2023. 8. 2. 15:09

 

예수님의 치유 사역 대부분은 질병 또는 기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제의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어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던 자들이 다시 그 자체로서의 자격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치유 사건은 죄인들을 환영한 것과 동일한 맥락 속에서 가능하였고 이것이 예수님이 의도한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계약의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치유적인 통치 시작의 일부로 보았던 것입니다.

 8:22-23, “벳새다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냐 물으시니” 이 사건은 마가복음에서만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앞의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신 사건(7:32-37)과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맹인을 치유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맹인은 예수님의 치유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무와 같은 것처럼” 걸어 다닌다고 말합니다(24절). 예수님이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자 그때 시력이 돌아와 모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25절).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비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이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더 분명하게 메시아 사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신속하고 은밀하게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8: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벳세다에서 가이사랴 빌립보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라고 합니다. 현재에도 차로 간다고 해도 한두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곳 빌립보 가이사랴에는 가장 최신의 이방 ‘신’인 로마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면서 묻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메시아로서 로마 자체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것입니다.

 8:28-29,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무리들은 예수님을 그냥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의 본문에 나오는 눈먼 사람을 두 번째로 만지신 것처럼, 이번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제 드디어 그들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표적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모두를 대변해서 “주는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을 ‘신’이나, 심지어는 ‘삼위일체의 제2위’라고 부르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신이셨고 지금도 그렇게 믿으며 앞으로 그 이유를 보여 주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것이 초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시라는, 정치적으로 위험하고 신학적으로 위태로운 주장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좌의 최종 후계자인 그분 앞에서 헤롯 안티파스나 다른 모든 유대인 군주들은 터무니없는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을 구원해 줄 신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왕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언하는 예언자십니다.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이 세상을 정의와 자비로 다스리시는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일은 바로 지금 참 하나님이 자신의 힘을 행사하기 시작하셨음을 보여 주는 표적인 것입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단순히 그 나라를 선언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나라의 왕이라고 생각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 메시아가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성전을 재건하거나 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적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과 정화와 치유의 그 풍성한 능력을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실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그 나라가 오게 하고, 이스라엘의 혼란과 문제를 해결하며, 이방인이 자기 분수를 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임무를 재해석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군대를 모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그 동료들을 타도할 계획을 선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특이한 새 의제를 강력하고도 은밀하게 말해 주는 일들을 행하고 다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치유 능력이 그 땅을 휩쓸고 다니며 새로운 일들을 일으켰고, 열렬한 충성심과 동시에 격렬한 반대로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말씀하셨는데 너무 비밀스러운 나머지 가까운 제자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은 드디어 1단계는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누구시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그분을 단순히 위대한 인간 스승으로 보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이 세상 모든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할 초인적 인물로 보고 싶어 하는가? 이 시간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