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38. 9:38-50. "죄에 대한 경고"

이헌교 2023. 8. 9. 16:19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31절) 말씀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앞으로 다가 올 위급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마지막이자 핵심 계획에 가담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예수님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기에는 아직까지 제자들은 그 위급함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9:38-40,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는 것을 제자들이라는 공식 집단에 국한시키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귀신을 내쫓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명예롭게 하며 예수님이나 그분의 운동을 나쁘게 말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태도 차이는 단지 배타적이냐 포용적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의 요점은 예수님의 사역을 특권을 받은 사적 차원에서 보느냐 아니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날 시점으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는 공적 차원에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의 태도는 앞 본문에서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를 두고 논쟁한 것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런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교회를 괴롭히는 증상입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전임 사역자나 신학자들은 교회가 우리 소유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평생 전통이나 형식 안에서만 예배하고 기도한 사람들은 이것이 ‘옳은’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형식보다 더 풍성하고 만족스러운 형식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기본적인 신학 교육이나 훈련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이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이라고 언급하실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훈련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들을 배제하려 한다면 그들은 심각한 문제 처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41~49절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발을 자르고 눈을 배 버리라는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독자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표현은 개인의 인격에서 소중한 부분, 즉 온전한 인간성의 여러 양상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때로 사람을 넘어뜨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직접적 의미는, 요한과 제자들이 예수님이 왕이 되셨을 때 품을 명예욕 때문에 제자 위치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 걸림돌들은 다 치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은 폭넓은 주제에 다양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먼저, 제자의 길은 힘들며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개인의 온전한 만족과 우리들에게 필요를 채워 줄 개인 영성의 길을 따르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세상 권세의 싸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일하시고, 악의 세력도 일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족적 영성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희생하려 하지 않고, 자기 안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희망은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영성은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요구하시는 것들이 그 자체로 죄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죄를 뿌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손이나 발이나 눈처럼,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 그것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면, 그것마저도 뿌리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병적이 강박도 아니고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것을 악하게 보는 이원론도 아닙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것일 뿐입니다.

본문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는 사람은 쓰레기 더미를 향해 가고 있다는 엄한 경고가 마가복음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게헨다’는 옛 예루살렘 남서쪽 모퉁이를 지나가는 계곡이었습니다. 고대에는 그곳이 예루살렘의 쓰레기 처리장이어서,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가 늘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그 말을 하나님의 길을 거부한 사람들이 죽은 후에 맞이할 운명을 일컫는 은유로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두 가지 의미를 결합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의 길, 평화의 길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민족과 수도는 함께 망하고, 예루살렘을 끔찍한 대형 쓰레기 처리장으로 만들어 버릴 거대한 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것이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경고하시기 위해 이처럼 더 큰 주제를 끌어오신 것입니다. 즉 자기 맘대로 어영부영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은 전쟁 중이다.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다. 희생해야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완전한 멸망을 초래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명을 말씀하십니다.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소금은 정화를 합니다.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람으로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마 5:13). 그러나 제자들도 자기 민족처럼 자신의 특별한 맛을 잃어버려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세상에 소금 같은 존재인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