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

[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47. 12:13-17. "세금에 대하여"

이헌교 2023. 8. 23. 14:28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 예수님을 말로 걸어 고소하려고 찾아와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이 질문한 것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였습니다. 이것을 잘못 건드리면 유대 사회는 큰 소동이 일어날 수 있는 로마에 내는 세금의 문제였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로마에 세금을 내는 문제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였던 것입니다. 물론 비용도 문제였지만 문제는 세금의 의미였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해방된 민족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500여 년 전 바벨론의 침략 이후로 그들은 계속해서 이방 민족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하스몬왕가가 지배하던 주전 163년부터 주전 63년까지는 어느 정도 독립 국가 행세를 했지만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스우스 장군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로마에게 세금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미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에게 세금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었습니다.

 12:13-14,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 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원래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과의 관계는 서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헤롯 당원들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공격하고자 하는 것에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두 가지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로마인들은 로마를 지키는 군대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식민지 사람들은 로마가 자기들을 지켜 주니까 그것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아주 굴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들은 이방인의 통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서 세금을 거두는 세리들의 농간도 유대인들의 감정을 많이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로마의 법을 거부하는 것이며 로마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라고 주장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세금을 내라고 하면 유대인들에게 돌을 맞을 형편이었습니다.

 12:15-16,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 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유대인들은 사람 손으로 형상을 만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식물과 꽃도 상으로 새길 수 있는지를 놓고 논쟁했지만, 인간의 상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로마 동전에는 황제 티베리우스이 상이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라고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대제사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황제는 대제사장 역할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신의 아들’과 ‘대제사장’이라는 글귀는 유대인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질문은 단순한 정치적 혹은 사회적 질문이 아니라 종교적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일부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 동전대신 유대인 동전을 사용했고, 손을 대기는커녕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예수님이 질문을 던진 사람들에게 그 동전을 가져와 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도 평상시에는 그 동전을 만지시지 않는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 보여 드리려고 그 동전을 찾게 해서 그들을 당황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의 속셈은 뻔합니다. 예수님이 로마에 세금을 내는 입장을 지지하게 만들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와 관계가 멀어지게 하거나, 아니면 세금 내는 행위를 비난하게 만들어서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반란선동죄로 고발하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반란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예수님의 답변을 이해하려면 먼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200년 전 마카비가 시리아에 반란을 일으킬 때 내건 표어가 “이방인들에게는 응당한 몫을 갚아 주고, 율법의 명령에 순종하라”였다고 합니다. 이 표어는 이방인과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의 이중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받은 대로 돌려주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사용한 폭력을 그대로 사용해서 되갚아 주라는 말입니다. 즉 복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다른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쓰는 혁명에 반대하셨고, 그분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표면적인 이방인의 지배보다도 더 깊고 여파가 큰 악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물론 “세금을 내라”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그래 로마인들을 주인으로 섬겨라”는 의미까지는 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동전에 새겨진 신성모독적인 상과 글씨에 주목하게 하신 사실은 “이 더러운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라”라는 느낌을 더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폭동 혐의는 피해 가면서 경멸감을 전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마카비의 표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교도들에게 응당한 몫을 돌려주어라”. 혹은 “이방인들에게 그들 동전으로 갚아 주어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이 세상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나 대제사장 행세를 하는 세상 군주들을 내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니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고, 황제에게 동전을 돌려주듯이 그 생명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성전 마당에서 그 말씀을 하셨으니, 하나님께 하나님 몫을 드리는 방식인 제사 제도를 더 완전한 예배로 대체해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혁명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정말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 폭력에 맞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악에 맞서 악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인가?

 유대교 사상과 유대교 안에서 시작한 기독교 사상은 언제나 이 세상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을 한 분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구원하시는 통치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도는 ‘종교와 사회’ 혹은 ‘교회와 국가’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빠르고 재치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답변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판에 박힌 양자택일식 질문에 메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잘 드리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