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57. 14:53-72. "대제사장의 집에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는 과정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다른 여러 혐의와 함께 거짓 예언자 혐의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판결을 받고 조롱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곧이어 등장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합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은 그날 밤 참 예언자이심이 입증이 되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53-54,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예수님은 한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열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가고 이제는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공개적으로 거절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금 심정은 어떠했을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홀로라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방비 상태로 유대인의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또한 마가복음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하시려는 일을 홀로 하셔야만 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많은 사람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이스라엘의 실패와 구속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끌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정말로 메시아라면, 홀로 행동해야만 하는 순간의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일행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증거를 찾지 못하자 대제사장 가야바가 직접 심문을 합니다(55-65절).
가야바의 심문은 네 단계로 구성되는 데 점점 더 강도가 세집니다. 첫째로, 기본적인 혐의는 예수님이 거짓 예언자이며 이스라엘을 오도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적을 베풀면서 사람들을 현혹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율법에서 멀어지게 하는 사람들을 경고합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과 그곳에서 받으신 비난은(3:22) 분명 그러한 혐의에 기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참 예언자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두고 하신 말씀(58절)은 그들에게 사기꾼이라는 확신을 주었고, 그래서 결국에는 그분의 눈을 가리고 조롱했던 것입니다(64절).
두 번째로 더 직접적인 문제는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였습니다. 11~12장의 논쟁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신 사건에서 비롯되었고(11:15-17)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에 특정 권위를 주장하실 뿐만 아니라, 성전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였고 멸망하리라는 경고까지 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58절에서 거짓 증인들이 예수님의 그 경고를 자기들이 이해한 대로 두서없이 표현한 내용을 보면, 그 경고가 더러 새어 나갔고 다른 ‘사흘’ 관련 이야기들과 뒤섞인 듯 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고소당하신 일차적이 이유는 성전에서 하신 일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재판관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이 은연중에 왕권을 주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자신이 진짜 왕이고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아니며, 신성모독도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위험하고 우스울 수는 있어도 유대인의 율법에서 사형에 해당할 만한 범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스스로 왕이라고 주장하고 로마 총독이 그 소리를 들었다면 결과는 하나뿐임을 예수님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형인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에서 사형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형, 참수형, 그리고 십자가형이 있었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너무 잔인하여 로마 시민들에게는 행하지 않았고 주로 말을 지독히 듣지 않는 노예들이나 흉악범들, 그리고 반란군들에게 행한 처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성전에 대한 질문에 침묵하시자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61절) 물으신 것입니다. 가야바가 말한 본문은 메시아를 명예롭게 일컫는 호칭으로, 최소한 시편을 기록한 때부터 쓰였다고 합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정치적 혐의에 대해서는 단번에 유죄를 인정하십니다. 예언자의 사역을 하시고 성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정말로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믿으셨습니다. 세례 이후로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과 행동은 그 신념에 기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시편 110편(막 12:36)과 다니엘 7:13(막 13:26) 인용하여 메시아의 더 깊은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가야바는 반란의 왕이라는 혐의와 더불어 동료 유대인들에게도 예수님을 넘겨줄 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혐의를, 즉 신성모독이란 혐의를 얻은 것입니다.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본문은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본문이 시편 110편과 다니엘 7:13을 함께 응축된 문장으로,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그렇다 내가 참 예언자다. 그렇다 내가 성전에 대해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 나는 메시아다. 너희는 내가 옳다고 인정받는 것을 볼 것이다. 그 인정은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은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자가 이스라엘의 공식 지도자 앞에서, 자신이 옳고 법정은 틀렸음을 하나님이 증명하실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어진 그들의 모욕과 조롱은 표면적 소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어서 마가는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수치스럽게 몰락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마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우리들은 힘든 진실의 길 대신에 쉽고 안전한 길을 택하는 모습들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패를 기록한 마가의 의도는 자신의 소명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진술을 더 밝게 빛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으셨고 그 때문에 목숨을 잃으셨고 베드로는 목숨을 구하려고 자신의 중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마가는 이 두 상황을 선명하게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