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31. 6:25-34.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어떤 어려움도 없이 늘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주위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항상 고민하고 걱정을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 내 일은 왜 이렇게 안 풀릴까?”하는 생각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성도들이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미래의 염려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염려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이런 염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만약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이 아닌 예루살렘에서 부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염려에 대해서 알았을까? 본문은 예수님이 삶에서 터득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마음속에 불안이 잠재되어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게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나의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문득 들곤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문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근본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복에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혹시 그 복을 다른 사람들이 가질까 하는 염려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떡으로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목숨은 예수님의 핏 값을 주고 다시 거듭난 목숨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신뢰를 하라는 것입니다. 즉, 온전히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염려에 빠진 제자들을 위하여 몇 가지 증거를 주십니다.
6:26-27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새는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씨도 뿌리지 않고 추수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창고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새들은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창조질서인 것입니다. 이것을 터득하면 인생에서의 염려가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수님은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들에 핀 백합화를 이야기하십니다.
6:28-29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들의 백합화는 일종의 야생화입니다. 야생화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혼자 들판에 아름답게 피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솔로몬을 예로 들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솔로몬의 영광을 능가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도 역시 부패가 있었고 위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죄악 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많은 부인과 첩을 거느리면서 이방 종교를 예루살렘에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솔로몬보다도 들에 핀 야생화가 더 보기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생화에게는 위선이나 부패가 없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야생화의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은 꽃병에 꽂혀 있는 꽃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옷을 걸쳐야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본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물질적인 것들을 경멸한다는 의미에서 최대한 적게 먹고 마시며 가장 허름하고 흉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구 못지않게 잔치를 좋아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서 가져가고 싶어 할 정도로 옷을 잘 입고 다니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세상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결론을 맺습니다.
6:33-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우리는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기에 그 불안에 휘말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 전체에 배경을 깔린 원칙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가 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을 가지고 왈가왈부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의 과거도 우리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인 것입니다. 기적은 오늘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 나는 지금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