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45. 10:16-23.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자신이 반대에 부딪히고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따르던 정치적 견해, 특히 로마에 대한 무장 혁명을 열망하던 이들의 견해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와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산상수훈은 기존의 지혜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보고 귀신과 동맹을 맺은 것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러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목자가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은 죽으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적대적인 세력의 가운데로 가서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조언은 뱀처럼 약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지는 가지고 있지만 두 가지 모두 갖춘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순결하지 않은 약음은 속임수가 되고, 약지 않은 순결함은 순진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의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문제는 최초의 제자들이 직면했던 것과 다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두 가지로 균형 잡힌 성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의 답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성품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무슨 귀신을 본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구할 것은 성령님에게 충만한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10:19-20,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으로 이방인 총독 앞에서나 헤롯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기에는 무식하고 지위 없는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답변을 하신 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뱀 같은 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10:21-22,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제자들은 정말로 박해받고, 투옥되고 사형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정말로 가족과 가족을 나누었고, 심지어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와 형제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예수님 또한 생전에 형제와 자매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첫 독자들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첫 교인들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의 한 종파라고 보면 됩니다. 예수파 아니면 묵시파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은 약 100년에 치르진 유대교 얌마 공동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회당의 출입을 제한당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유대인 회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추종자들은 당연히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는 지금 그런 첫 독자들에게 끝까지 견디라고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본문에서 '인자가 오리라“는 구절은 많은 해석상에서 많은 토론과 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그러나 가징 합당한 해석은 이 구절은 다니엘 7:13을 생각나게 하는데, 거기에서 ‘인자의 오심’은 하늘에서 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고난 이후에 높임을 받아서 이 세상의 심판자이자 통치자가 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대적한 ‘짐승’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하면 여기에서 그 말의 의미는 이런 것으로 보입니다. 제자들은 박해라는 가혹한 현실을 맞이할 터인데, 그들은 인내하고 견뎌 내야 한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즉 평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도시와 마을에 임하는 때가 올 것이다. 특히 나중에 보겠지만, 그 심판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수도 예루살렘에 임할 것이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따라서 23절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사명을 계속해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희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마태는 마태 공동체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마태복음이 쓰여질 당시 예수 추종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박해와 멸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마태복음서는 참으로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박해를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권세에 눌림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서 어울리기가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뱀처럼 지혜로운지 그리고 비둘기처럼 순결한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