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49. 11:7-15. "세례 요한보다 더 큰자들"
예수님은 지금 세례 요한의 시대까지 이루어진 다채로운 역사의 흐름 자체가 이제는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이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기다리던 그것이 오면 물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실을 말하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오리려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11:7-8,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예수님은 요한이 누구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문장은 갈릴리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헤롯이 찍어낸 동전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요한은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 특히 왕족이 입을 법한 좋은 옷을 입지도 않았습니다. 요한은 그들과 달랐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예언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냥 아무 예언자가 아니라. 이전에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예언자, 하나님의 메시아가 오시면 그가 길을 준비할 운명을 타고난 예언자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9-10절).
본문에서의 요점은, 예수님은 단지 요한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메시아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내가 바로 구약에서 말하던 메시아라고 말씀하지 않을까? 누가 요한을 감옥에 집어넣었는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헤롯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이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헤롯이 예수님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처럼 감옥에 가두고 아마도 요한처럼 죽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누가 전하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나서서 “그렇다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치유와 같은 메시아의 사역을 해 오셨고, 앞으로도 더 많이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게 했으며, 예수님과 자신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국에 알리라는 사명을 주어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왕이라는 주장을 하고 다닌다는 말이 헤롯의 귀에 들어가게 하지는 않으셨던 것입니다.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천국은 이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요한은 분명 그 준비를 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서 사는 사람,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취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요한보다 “더 크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신약 시대에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아무리 부족한 자라 하더라도 세례 요한보다 더 능력 있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우리들은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장차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았고, 그의 부활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위대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복음의 점진성”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에 대해서 우리가 세례 요한보다,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보다 심지어 루터나 칼뱅보다 더 많은 복음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요한은 “오리라 한 엘리야”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예수님은 지금 “요한 네가 바로 불의 사람, 엘리야 같은 인물이다. 나는 엘리야 같은 이의 뒤에 오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암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에게 “귀 있는 사람은 들을 지어다”(15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즉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그냥 말만 하고 다닌다면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감옥에 있던 요한처럼 사람들이 “메시아의 행적”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영문인지 묻게 만드는 것이, 쉽게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요한 보다 더 “큰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나는 진정으로 요한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