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53. 12:15-21. "하나님의 종"

이헌교 2022. 8. 10. 16:39

 

예수님은 사역을 하면 할수록 사방으로 압력을 받았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병을 고쳐 달라고, 악한 영을 쫓아내 달라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명해지면 질수록 반대 세력도 커져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예수님이 마귀와 한 통속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멈추지 않았을까?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이사야서의 ‘종’ 이야기입니다.

 12:15-16,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다”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병 고침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다만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직 예수님의 사역이 끝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자신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으로 말미암아 빚어지게 될 여러 가지 난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합니다.

 12:17-18,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마태는 이사야서를 많이 인용하는데 그 이유는 이사야가 메시아로서의 주의 종에 대해 많이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은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내가 택한 나의 종”은 이사야 42:1, 43:10, 44:1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원래 이 예언은 고레스 왕에 대한 것인데, 그는 바벨론에 포로 된 유대인을 해방하는 주의 “기름 받은 자”(사 45:1)로서 하나님께 택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는 정치적, 권력적인 메시아를 상징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방 세계까지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12: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정치적 권력자로서의 메시아의 상징인 고레스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겸손한 종으로서 영적인 메시아임을 마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바리새인들과 다투지도 아니하고(15절). “들레지도 아니하리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16절)고 한 것을 이사야 예언처럼 성취가 되었다고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20-21,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본문은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좋은 해석은 상한 갈대는 고생하며 떠도는 자들(9:36)을, 연기나는 심지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11:28)로 보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사야서 42장을 인용한 것으로써 이사야가 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하나님의 종은 특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과 정의를 이 세상에 가져올 인물인데, 그 임무를 세상 권세자들처럼 이스라엘과 민족들을 윽박지르고 못살게 굴거나, 위협하거나 싸우는 방식으로 성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스라엘과 이 세상 어두운 구석구석에 전하면서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지금 예수님의 사역의 결말, 즉 십자가에 처형이 된 것을 아는 상태에서 그 사역을 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실 때만이 아니라, 이미 갈릴리에서 일을 하시는 방식에서도 그 종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을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폭력과 오만의 길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언제나, 더 많은 돈과 땅과 안전과 지위를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싸우고 죽이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외침에 묻히고 맙니다.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위대하고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야 맙니다. 세상은 목소리가 큰 사람의 요구부터 들어줍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길에 방해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제거합니다. 쓰러져서 부러질 수도 있는 갈대나 불이 다 꺼져 가는 심지처럼 약한 것들을, 그들은 아무 망설임 없이 짓밟아 버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종의 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오만의 길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그와는 정반대의 종이 여기에 있다고 마태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단 하나의 빛이며, 단 하나의 희망이라고~

 지금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 수 있다면, 이곳은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을 맡는 자들입니다. 이런 예수님이면 우리들이 어찌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일에 지치고 억눌린 교회의 일꾼들 그리고 도움을 바라며 성경을 뒤지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