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77. 17:22-27. "성전세"

이헌교 2022. 10. 31. 13:54

 

산에서 내려온 후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17: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예수님은 이미 16:21에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한 번 더 예고하시는 것일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소명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다면 그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심지어 죽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또한 별반 다름이 없었음을 지금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하기 전의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하여 거듭남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3 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치관은 바뀌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다윗과 같은 강력한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무력으로 해방하고 팔레스타인 일대를 다스릴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본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러면 제자들은 언제 거듭남을 했을까?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 세례를 받고 난 후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에 대해서 지적을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우리가 믿는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함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가!

 24-27까지는 성전세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를 내지 아니하느냐”예루살렘 성전 유지를 위해, 즉 속죄 제물, 제사장들의 의복, 운영비등을 위해 매년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들은(출 30:11-16), 매년 유월절 직전에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반 세겔은 성인 남자의 2일 치 노임이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세금을 안내면 물건을 차압당했다고 합니다.

 17:25-26,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예수님은 지금 성전세를 내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전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었고, 따라서 무너질 집이었습니다(7:26-27). 예수님이 짓고 계신 새 ‘건물’과는 대립되는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곳이었습니다(16:18), 아름답고 거룩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도적의 소굴이 되었고(21:13), 하나님의 심판이 그 위에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머물고 있던 곳이었기(24:2)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본격적 저항을 위해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었고 갈릴리는 적합한 장소도 아니었으며, 게다가 말단 세리는 적절한 대상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이 직접 성전에 가셔서 탁자를 뒤엎으시고 동전을 사방으로 흩으실 것입니다(21:12). 하지만 지금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게 낫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실제로 성전과 지도자들의 권위에 맞설 것이라는 것을 지금 알리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계를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본문에서 베드로가 정말로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가서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팔아 세금을 내라는 말을 두 사람만이 아는 농담으로 표현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마태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예수님은 성전 체제를 가볍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습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요점은 예수님께서 물고기 속에 동전이 나타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물론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예수님이 세금을 잘 내는 좋은 시민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요점은 예수님이 뛰어난 전략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비둘기 같이 순결을 유지하면서 뱀처럼 지혜롭게(10:16) 행동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마태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당시 마태복음을 접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태는 지금 독자들에게도 예수님처럼 비둘기같이 순결을 유지하면서 뱀처럼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본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지금은 예수님 시대보다 더 물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본질과 비본질을 구별하여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성도의 삶을 유지하면서 뱀처럼 지혜롭게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본질은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비본질은 그것은 각자가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비둘기처럼 순결을 유지하면서 뱀처럼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