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97. 23:1-12.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경고"
23장은 마태가 이 복음서의 뼈대로 삼는 다섯 묶음의 가르침 가운데 마지막 가르침이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5-7장의 산상수훈이 첫 번째 묵음이고, 그다음이 10장에서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주신 가르침이고, 그다음이 13장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그다음에는 18장에서 공동체로 사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과 균형을 이루는 또 하나님의 긴 가르침이 마지막에 나오는 데 23-25장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마태는 왜 이렇게 구성을 했을까? 마태는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존재로, 모세보다 더 모세 같은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율법 책 다섯 권을 주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또한 새 언약의 책을 다섯 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이란 하나님과 이 세상의 새로운 관계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이 보이는 요단강까지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 이제 죽음만 통과하면 하나님이 만드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지점까지 데려오신 것입니다. 단 모세와 달리 예수님은 강 이편에 남아 계신 채 다른 사람이 백성을 데리고 건너가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여호수아처럼 백성을 이끌고 직접 새 세상으로 들어가실 것이라고 마태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그 당시 종교적,이며 또한 정치적이기도 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23:2-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예수님의 책망은, 그들이 지키라고 강요하는 모세의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5:17-19절 에서처럼 모세의 율법인 토라가 선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처음부터 계속 분명하게 말씀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22:37-39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더 크고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정의와 자비와 신실을 의미합니다(23:23).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을 그토록 잘 가르쳐 주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지만 그 문제에만 부딪히면 정작 중요한 그 짐을 들기 위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다는 게 예수님의 지적인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쇼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23:5-7,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그들은 경건하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문이 들어간 큰 곽(성구함)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팔과 머리에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겉옷 네 귀퉁이에 다는 기도를 위한 긴 술도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를 보여 주려는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예로운 호칭과 명예로운 자리, 그리고 사회에서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명성,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은 하찮게 여기시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에서 모세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리”라고 말씀하십니다(8절). 그리고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본문은 오랫동안 설교자들이 잘 차려입고 대중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단순히 종교 지도자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사회 지도자요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은 단순히 교회 지도자들만이 해당되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책망을 거창하고 화려한 자리에서 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가는 길에서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참 제자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자신의 짐은 쉽고 가볍다고 약속하셨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그 짐 대신 예수님의 짐을 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11:28-30).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이 다시는 그 짐에 눌리지 않도록, 짐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짐을 지러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우리는 예수님이 진정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깨닫는 만큼 우리의 짐은 더 가벼울 것입니다.
이 시간 내가 지고 있는 짐은 무거운지 아니면 가벼운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