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베드로후서강해]#3. 2:1-10상 "거짓 선생을 주의하라"
오늘 본문은 거짓 교사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대해 항상 깨어 경계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멋지고 똑바른 길, 완만하고 쉬운 길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라도 길을 잘못 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예수님 또한 직접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중에도 그분이 ‘사탄’이라 부르셨던 사람이 있었고, 또 결국 그분께 사탄의 일을 저지른 다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쉽게 길을 잃었는지 기억하면서, 거짓 교사들과 예언자들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기독교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들이 의혹을 품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러나 베드로는 친절하고 온유하라고 가르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속이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비둘기같이 순결하면서도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16). 이것은 어려운 조합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품의 이 두 측면을 갖추려 애쓰지 않는다면, 방향을 바로 잡았어도 그리 멀리 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는 분명 뱀의 지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의 출현에 대해 경고합니다.
2:1-3,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베드로는 거짓 예언자들이 구약 시대에도 일어났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왕상 22:12, 렘 6:13). 그들의 특징은 낙관적으로 예언한 것이었습니다(렘 6:14). 예수님 또한 거짓 예언자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마24:11). 바울 또한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딤후 3:1-7). 그들의 특징은 진리를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며 인기를 얻는데 몰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정체를 나타내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언자들 그리고 교사들과 관련한 충격적 사실은, 그들의 말이 아주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쪽 길은 위험’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가르침은 예수님을 많은 교사들 가운데 한 사람일뿐이라고 말하거나, 그분의 죽음이 사실 ”값을 지불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며, 보통 ”주를 부인“ 한다고 합니다. 또한 거짓 가르침은 ””역겨운 행위“를 권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경고만으로도 우리에게 경고가 될 것입니다. 거짓 가르침은, 결국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혐오스럽게 여기는 행동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진리의 길이 모독“ 당할 거라고 경고합니다. 외부인들은 그러한 자칭 그리스도인 교사들을 바라보며, 모욕적인 말을 퍼붓기 좋은 목표물로 여길 것입니다. 또 결국 그 거짓 교사들은 수입을 올리는 수단으로 날조된 예언을 이용할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사게 하거나 강의에 등록하게 하는 데는 색다른 개념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대로 된 순수한 기독교 신앙과 삶은 오류이며 더 쉬운 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항상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더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과거의 시건들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2:4-7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베드로는 우선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유명한 악한 천사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날까지 그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어 지키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심판이 신속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세상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파괴와 롯의 구원입니다. 이 각각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이해야 할 것은, 심판을 받는 악이 이론적 문제들에 대한 엉뚱하거나 잘못된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상황을 망치는 행위, 즉 죄의 불경건과 수치스럽고 방탕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베드로는 지금 거짓 선생들이 복음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2:8-10상,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구원하는 일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베드로는 단지 거짓된 가르침과 거짓된 행위의 위험과,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심판하시리라는 사실만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격려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그 엉망인 상황에서 구해 내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과 자비, 이것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견고한 약속인 것입니다. 또다시 베드로가 하는 말은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지만, 일반적 의미는 명백합니다. 유대교가 그랬듯이 기독교 신앙도 인간의 욕망과 관련하여 일반적 규제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그러한 규체를 없애려는 교사들이 나타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10절에서 지적하는 치명적 조합에는 더 예리한 초점이 있습니다. 즉 “육신의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구원하는 일을 멸시하는 자들”이 그것입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잘못된 길을 가기는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근본 요점은 긍정적입니다. 베드로는 9절에서 그것을 명확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즉 우리는 시험을 받을 것이고, 악하고 부도덕한 삶들은 번영하는 듯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롱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백성을 시험에서 구할 방법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또 심판의 날에 대비하여 악한 자를 가두어 둘 방법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명령에 딱 맞는 특성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