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

[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62. 18:18-28. "아볼로의 등장"

이헌교 2022. 7. 18. 20:24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고린도 전도를 끝내고 에베소를 거쳐 가이사라에 상륙한 후 안디옥으로 돌아옴으로써 2차 선교 여행을 끝내고 다시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이 모든 규정과 규칙에, 특히 종교적 ‘의식’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문의 내용에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에는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와 그 주권을 부인한다고 볼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전서 9:20-22에서 말한 내용대로 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 함이니”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과 율법을 위해 열심을 다해 싸웠지만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표적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착하는 순간부터 자신이 유대인의 전통을 따르는 경건한 사람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설명을 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바울이 살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바친 엄숙한 기도와 서약의 표지로서 그리고 그것을 상기하기 위해서 특별한 약속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주께서 바울에게 예상보다 길게 고린도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을 때 바울은 자신이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는 머리를 깎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 동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즉, 마침내 바울이 고린도 땅을 떠날 때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고린도에 오래 머무는 동안 하나님이 그를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에 대한 신뢰의 표지로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면, 이제 그것을 자를 적절한 시기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9~23절까지, 누가는 이어지는 바울의 여행을 빠르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이사라로 가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갔다. 그리고는 바울의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8:24-25,“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가 처음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는 알지 못했고 그래서 정확하게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능통하고 교육도 많이 받은 사람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아는 복음의 핵심적인 것을 모르고 있는가는 다음 장에 나오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만나는 다음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해 누가는 아볼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가 그 제자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바울이 에베소에 미친 전반적 영향과 그 결과로 생긴 일에 대한 중요한 다음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그러면 아볼로가 모르고 있었던 것을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1:5, 22에서 본 바와 같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까지도 잘 따라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로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통해 사람들을 온전한 교제 안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 주셨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알렉산드리아라는 대단한 대학 도시에서 온 학자에게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가르치는 브리스길라의 모습을~이처럼 기독교의 복음은 세상의 관념을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복음을 완벽히 이해한 아볼로는 고린도 아가야 지방으로 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고린도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네 파로 나뉘었다고 고린도전서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볼로를 매우 존중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가 고린도에서 했던 사역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그 결과로 생긴 불편한 분파주의를 바울이 지적했지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3:6)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단계적 방법에 대해서 고정된 패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때는 이렇게 일어나고 어떤 때는 저렇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속도로 성숙해 가듯, 한 영역에서 어떤 사람은 성큼성큼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나중에 따라잡듯이 우리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열린 마음으로 즉, 나의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는지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