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

[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73. 22:12-22. "바울의 증언"

이헌교 2022. 8. 18. 16:26

 

바울은 불과 몇 주 전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집필을 했습니다. 특히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에게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롬 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에 대해 무지하다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그들의 역사에서 무엇보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실천적으로 계시하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무지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쓴다”. 즉 하나님 나라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그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심을 보지 못합니다. 언약의 성취, 신명기 30장에서 약속하는 실제적이고 최종적인 ‘유배로부터의 귀환’, 율법의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메시아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0:1-11에서 하는 말은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의 주님이신 메시아를 믿기만 하면, 율법에 기초한 모든 민족의 꿈과 희망이 진정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내가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사 65:2)을 인용한 로마서 10:21절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11장의 내용이 실현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11: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런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본문을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22:12-13,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우리는 유대인들의 심정을 이해해야지 바울이 왜 아나니아를 이야기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하는 충성심을 이해해야 하며, 이 하나님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모든 것과 회당 밖의 모든 것과 성지 경계 바깥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공포를 이해해야만 왜 그들이 바울을 그토록 분노하며 거절해야 했는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나니아가 얼마나 경건하고 정통적인 유대인인지를 강조하며 그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을 “의인”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2: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바울은 성전이 말도 안 되는 엉터리라고 선언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기도하고 있었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22:17-18,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내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바울은 주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경고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한 일, 즉 22:19-20,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바울은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에게 들은 말씀을 동족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들을 박해했으며 또한 스데반이 죽을 때도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켰다고 항변했지만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 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바울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2: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이방인’이란 단어가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유대인들이 거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구원의 불쏘시게로 알고 있지 구원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로 보내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봐라, 그가 자기 입으로 말했고, 우리가 귀로 들었다. 결국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다. 이방인들에게 있는 그대로 지내도 괜찮다고 말하던 사람이다”라고. 그들은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나 데살로니가전서나 다른 서신들 중 아무거나 하나라도 그들이 읽었다면 온 세상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처럼 살라고 가르치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가 전파하고 다니는 이 메시아라는 존재, 애초부터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던 이 불경한 예수라는 사람만 믿으면 아무 하고나 식탁 교제를 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면서 광분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쓸 당시에는 자기 동족에게 시기심을 불러 일으켜 그들 중 몇 명이라고 구원을 하고자 결심했을 것입니다(롬 11:14).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족장시대를 bc 180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약 1,800 년간의 관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하루아침에 깬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탄생한지도 2,0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념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유명한 신학자 ‘자크 엘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뒤틀려졌다”라고.

 이 시간 나는 기독교에 대한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