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

[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90. 28:11-22. "로마로 입성하다"

이헌교 2022. 11. 8. 13:41

 

오늘 본문은 로마로 향한 바울의 여행 과정과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내용입니다. 바울 일행은 겨울철 3개월 동안 멜리데 섬에서 지내고 로마로 향합니다. 12~14절은 로마로의 과정을 소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8: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바울이 로마서를 약 2년 전에 집필했기 때문에 로마에는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을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그들은 그 도시를 방문하는 황제나 귀환하는 왕을 대하듯이, 멀리까지 나와 그를 만나서 도시 안으로 그를 호위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에 바울 일행은 이미 보디올 항구에서 다른 신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간 머물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약 160k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로마의 공식 항구는 오스티아이지만 여행자들은 종종 보디올에서 로마까지 육로로 이동하곤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보디올 교인들이 로마 교인들에게 바울의 소식을 전한 것 같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바울이 손에 쇠사슬을 차고 160km의 긴 거리를 걸어서 왔는데 로마에 있던 교인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그리고 얼마나 힘이 날까, 바울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보여 주는 진정한 표지였을 것입니다. 로마의 교인들은 그의 편지 즉, 로마서를 읽었고, 그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환영하러 나왔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아마도 바울은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도 바울은 숙소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병사 한 명과 생활해야 했고 20절에서 알 수 있듯이 늘 쇠사슬에 매여 있어야 했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있었습니다(16절).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합니다.

 28:17-18,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그 당시 로마는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중심지였고 회당도 수십 개가 있었고,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 회당에 출석했다고 합니다. 마치 오늘날 런던이나 뉴욕에 있는 이민자 교회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했을까?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이상 소란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크리스투스’와 관련된 폭동 때문에(18:2),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로가 다음 황제로 즉위하고 그 추방령을 취소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것을 6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이제 로마에 다시 들어온지 이제 5~6년 정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바울은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8:19-20,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바울은 자신의 혐의가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고발을 당했는지에 대한 소식이 이미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까지 미쳤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 로마서 11장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과 일관된 입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자신도 유대인이며 자신이 메시아이신 예수를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민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고발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이곳에서 쇠사슬을 매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망은 무엇일까? 그들이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던 악과 부패가 없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계 새 창조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들은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해 유대로부터 들은 소식이 없었고, 바울이 얼마나 성가신 인물인지 그들에게 경고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합니다(21절).

 28: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더라”그들은 예수 추종자들이 어디를 가든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이 파”는 “분열, 거짓된 종파나 가르침, 이단”을 의미합니다(5:17, 15:5, 24:5). 그들은 은연중에 기독교가 이단이며 바울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나 세계의 역사를 보아도 많은 종교 전쟁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세계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시절에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많은 고난을 당했고 죽었다고 합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많이 학살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전한 복음을 모든 유대인들이 받아들였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갭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복음을 끝까지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복음을 전하는 나의 사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