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야고보서강해]#2. 1:9-19. "신인류"
오늘 본문은 앞부분에서 시험에 참고 기뻐하라(2~4절)는 권면에 이어 시험의 원인과 유혹을 이기는 비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시험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 즉 연단과 자기 욕심과 사탄에게 오는 시험(유혹)이 있는데 전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 반면 후자는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에서 그들의 주님이자 선생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안에서 구약의 모든 내용이 새로운 의미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도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11,“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본문에서는 이사야서 40:7-8을 인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구약 성경안에서 자신이 주는 특별한 가르침을 들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재물은 다 헛된 것이므로 그것이 많다고 기뻐할 건 없다면서 실망하지 말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하다고 느낀다면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당신이 염원하는 대로 높아진 것이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부자라고 느낀다면 겸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야고보는 지금 세상을 뒤집어 거꾸로 보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덫에 휘말리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재물이나 부자를 시들어 없어져 버리는 풀과 꽃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고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본문에서의 “시험”은 2절의 시험과 같으며, 하나님께서 믿음의 연단을 위해 섭리 가운데서 허락하시는 시련이나 고통, 박해 등을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외적인 시험은 13절 이하에 나오는 내적인 유혹과는 다른다는 것입니다. 내적의 유혹은 참는 것이 아니라 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는 괴롭고 힘들지만(히 12:11) 그것을 잘 견디고 꾸준히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여 승리하는 자 곧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시험의 근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13-14,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본문에서의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련으로서의 시험(2, 12절)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시험인 유혹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성이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악과 접촉하실 수도 없고 인간이 행하는 악의 근원이 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각 사람의 시험은 각자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야고보는 유혹이 올 때 하나님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하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은 안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순결한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본능을 따르면 결국에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욕망은 가계도를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1:15-16,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야고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망은 아이를 잉태한 여인과 같은데, 그 아이는 죄란 것입니다. 죄란 자아의 한 부분,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진정한 생명에서 우리를 떼어 놓는 ‘자아’의 그 한 부분에서 직접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 아이인 죄가 자라면 역시 아이를 낳습니다. 그 아이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진정한 인간 생명을 악화시키는 욕망을 따를 때 나타나는 최종 결과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12절에서 약속하셨지만 욕망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1:17-18,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명백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단지 참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 깊은 곳까지 다가와 우리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내면의 동기를 바꾸는 약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넉넉하게 주시는 하나님,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에 가르침을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세상을 밝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해와 달과 별들은 다 그 빛이 비치다가 사라지는 반면, 하나님의 빛은 한결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사야 40장이 생각나는 말씀이 나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하나님은 새로운 가계를 형성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이라는 강력한 말씀을 통해, 새 생명을 낳는 새로운 출산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원죄가 없는 신인류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여 원죄가 없는 신인류인지를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