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14. 6:1-8. "네 명의 기사"

이헌교 2025. 3. 6. 11:35

 

오늘 본문은 특정한 재앙을 상징하는 네 명의 기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15:16에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않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죄악이 밝혀져 그 본색이 드러나 폭로되고 최악의 일을 벌이도록 허용되지 않으면, 그 질병들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네 기사가 나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두루마리는 읽힐 수 없습니다. , 사자-사자-어린양의 승리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계시록과 관련된 모든 해석은 부분적이고 난해한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성도들로 하여금 계속 생각하고 기도하도록 만들어진 책이지, 모든 것에 만족할 대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죽임 당한 어린양께 온 창조 세계가 우레와 같은 영광스러운 찬양을 노래하는 장엄한 알현실 장면을 경축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승리를 거두셨다는 사실을 경축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진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어두운 악의 권력이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듯이, 이 땅에 악이 더 충만하여 폭력, 억압, 죽음 자체의 오랜 원형을 보지 못한다면, 세상을 제대로 치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이 두루마리에 찍힌 처음 네 봉인을 뗄 때, 세상의 질병을 치료할 네 가지 영광스러운 해결책 대신 네 생물이 네 말과 기수를 소환해 저마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네 기수는 스가랴 1장과 6장의 환상에서 많은 내용을 빌려왔지만 본문에서는 전혀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1-2,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본문에 나오는 흰말과 활을 든 기수는 간혹 19:11과 부분적으로 유사점에 근거해 메시아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첫 번째 기수는 여기저기 공격하여 강력한 나라들을 제압하고 그들을 다스릴 주권, 면류관을 주장하는 지상의 정복왕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봉인이 떼어졌을 때 일어난 일은, 세상의 질병을 해결할 하나님의 뜻이 두루마리에서 읽히기 전에 인간의 정복과 억압 세력이 최악의 일을 벌이도록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붉은색은” 피를 상징하고 붉은말은 전쟁을 의미합니다(12:3, 17:3). 이 전쟁은 요한 당시의 로마 군대가 일으키는 전쟁이나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 간의 마지막 싸움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말 탄자 와는 대조적으로 큰 칼을 받았다는 것은 옛 왕들은 허세를 부리기 위해 차는 칼이며 아마도 대량 살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장차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일으킬 자들은 엄청난 큰 무기들을 갖추어 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여 붉은 피를 쏟게 할 것이라고 해석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6:5-6, “셋째 인을 떼실 때에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본문에서 검은 말은 흔히 국내외 폭력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경제적 문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즉 생필품이나 가난한 백성의 주요 식단 가격이 폭등했고, 사치품 및 기름과 포도주는 동일한 가격이 유지되어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희생 삼아 훨씬 더 부유해지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창백한 청황색 말이 나옵니다(8). 이 말은 죽음을 등에 태우고 죽은 자들의 거처 히데스가 인격화된 생물입니다. 이것은 모든 독재자와 모든 적 그리스도가 가하는 궁극적 위협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그들이 활개치는 시기 전에 전쟁과 기근을 비롯한 수천 가지 다른 일들이 사람들을 제멋대로 다루었음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넷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기본적인 질병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세상을 누비는데, 두루마리의 구원 메시아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그렇게 하도록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네 말과 그 기수는 상징입니다, 요한은 독자들이 즉시 창밖을 내다보여 이 악당들이 에베소나 서머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또 순서 역시 상징적입니다. 요한은 정복, 다음에 경제적 재난이, 또 경제적 재난 다음에 광범위한 죽음이 뒤따를 것이라고 추측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뒤에 연속되는 나팔(8-11)과 진노의 대접(16) 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각각의 연속 순서와 그 사이의 내용은 고도로 복합적인 하나의 실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환상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문제와 고통을 이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대답은 인간의 오만한 악을 최대한 드러내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구해 내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7).

 만약 우리가 동일한 문제와 고통을 다음 환상의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대답은 파괴 세력이 최악의 일을 벌이도록 허용하여, 그 뒤에 세상에 자신의 나라를 온전히 최종적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8-11). 그리고 우리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세 번째 환상의 각도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때(12장과 13), 우리가 보는 문제의 총체적 심각성과 공포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반역적 세상에 이집트의 재앙에 버금가는 재앙을 내려서 마침내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오랜 세월 그들을 종속시켰던 어둠의 세력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12-19). 그때, 오직 그때에야 가장 어두운 권력이 처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20). 그때에야 고질적 질병이 계속 치유되지 않고 억눌린 슬픔이 계속 비탄을 낳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전혀 없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 6-20장은 우리가 듣고 싶었던 내용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치유되기 위해,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할 내용인 것입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난과 역경이 동반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