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31. 14:14-20. "인자와 같은 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 곡식 추수의 비유를 통해 재림에서 성취될 신자와 불신자의 최후 상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구원하시는 장면과 포도송이의 수확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진노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서는 먼저 구원이 있고 다음에 심판이 있다는 성경 전체에 일관된 사상이 언급되고 있습니다(7:1-4, 마 25:31-46).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흰 구름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타고 오시는 것(행 1:8-11)으로서 그리스도의 성결과 영광과 위엄을 갖추신 분임을 나타내며 특히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신적인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마 24:30). 또한 금면류관은 왕이 쓰는 금으로 만든 면류관으로서 성육신과 부활을 통해 가시관을 쓰시고 죄와 죽음, 사탄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와 만유를 통치하시는 왕적인 권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히 2:7, 시 8:6).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의 의미는 요엘서 3:12-14을 반영한 것으로써 밀과 가라지를 낫으로 베어내듯이 심판의 낫을 휘두르시며 마지막으로 심판의 추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첫 번째 오셨을 때는 씨를 뿌리셨고(마 13:37), 두 번째 오실 때는 그것을 추수하여 알곡은 거두어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던져 태워버리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눅 3:17).
14:15-16,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천사가 추수하라는 명령을 그리스도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 사역을 기획하시고, 경영하시며 성자 하나님은 그 뜻을 따라 실천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요 5:19). 추수 비유는 심판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있는데(렘 51:33, 호 6:11),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사용하셨습니다(마 13:30). 이 추수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를 모으는 것을 가리키며 구원을 의미하는 추수일 가능성이 많습니다(마24:3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천사들을 시키지 않고 친히 낫을 휘둘러 추수를 합니다. 형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알곡과 같은 성도들을 거두어들이는 구원의 추수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을 통한 구원입니다. 계시록에서 항상 그렇듯이, 요한은 독자들이 예상되는 박해에 믿음과 인내로 맞서라고 격려합니다. 천사가 나타나 ”인자 같은 분“(단 7장의 암시)에게 ”낫을 들고 수확“하도록(욜 3장) 독려할 때, 우리는 이들을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준비를 갖추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요 4:35) 신실한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박해와 순교가 와야 한다면, 이 박해와 순교는 단지 야만적 체제가 제멋대로 가하는 사악한 공격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인간의 악함을 추수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포도원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14:18-20,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닳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포도나무와 포도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는 성경에서 보통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이미지로 간주됩니다. 포도의 맛이 상할 때에만 문제가 발생합니다(사 5장). 그렇다면 왜 요한은 포도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진다고 말하는가?(19절) 이 구절은 우리를 또 다른 예언서로 데려가는데, 이사야 63장입니다. 거기서 이사야 9장과 11장의 메시아와 이사야 42장과 53장의 종 둘 다의 발전인 듯 보이는 왕실 인물이 등장해, 혼자 힘으로 포도를 짓밟아, 그 과정에서 그의 옷이 과즙으로 물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그는 복수, 즉 하나님의 땅을 망쳐 놓고 하나님의 백성을 예속시킨 사람들을 짓밟아 부수는 데 열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암시 자체는, 이 장면에서도 포도를 모아 포도주 틀에 던지는 것이 다가오는 심판의 표징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포도주 틀은 바벨론과 모든 괴물 숭배자가 마실 하나님의 진노가 준비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포도주 자체는 추수되고 있는 순교자의 혈액인 것입니다.
요한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포도주 틀이 ”성 밖“에서 밟히고 있음을 생각할 때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회개하지 않는 바벨론이나 다른 도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그림자였다면,, 우리는 포도주 틀이 도성 중앙에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히브리서 13:11-14에서 알고 있듯이, ”성문 밖“은 예수님이 친히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신 곳에 대한 요약 진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 순교자 스데반 자신이 ”성 밖“으로 떠밀려 돌에 맞았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입니다(행 7:58). 그렇다면 포도주 틀 밖으로 흘러나온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란 의미는 천육백 스다디온은 약 300km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끔찍한 장면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이것 또한 상징적 예언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무언가 도성에서 흘러나와 그 깊이를 더해 간다는 관념은 에스겔서 마지막에 도성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환상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서 불어나는 피의 강물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이해했을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더 깊은 은혜 사역을 낳을지 아니면 더 깊은 심판 사역을 낳을지 우리가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세상의 악과 반역을 모아서 그것을 자신에 대한 찬양과 자기 백성들의 구원으로 바꾸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 속에서 격려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교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가 되어 그분의 지혜로운 치유의 질서를 세상에 가져다준 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담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마지막 심판을 생각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