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32. 15:1-8. "하나님의 진노"
오늘 본문은 앞의 14장에 묘사된 하늘의 장면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것을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장과 16장까지는 일곱 대접 재앙이 묘사되고 있는데 이 재앙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7장은 일곱 대접의 심판의 결과로서 바벨론에 대한 재앙을, 18장은 바벨론 멸망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본 15장은 일곱 대접의 재앙이 쏟아지기 전 서막을 다루고 있으며, 이 서곡은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타나면서 하늘의 승리자의 노래가 들려오고 일곱 대접이 준비되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5:1-2,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성경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염려할 이유일 뿐 아니라 기뻐할 이유도 됩니다. 앞에서 이미 시편 96편과 98편 마지막의 유명한 본문을 언급했습니다. 거기서 온 창조 세계, 즉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과 채소도 야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에 기쁨으로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왜 이것이 복음인가? 유대의 외딴 시골에 있는 한 마을을 생각해 봅시다.. 이곳은 정부 관료는 고사하고 장사치조차 자주 오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이곳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이곳는 순회재판관이 몇 달에 한 번씩 오는 곳입니다. 그러면 억울한 사람들은 그 순회 재판관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재판관이 와서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 일을 해결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고 고발과 변론을 똑같이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는 각 사건을 적절하고 공정하게 듣고, 특별히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혼란이 진정되고 질서가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안도의 숨을 내쉴 것입니다. 정의가 시행되었습니다. 고마워하는 지역 공동체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감사를 재판관에게 표할 것입니다. 그러면 작은 마을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확대해봅시다. 악한 제국의 지역 하수인이 점점 득세하여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돈과 생명, 쾌락을 가져갑니다. 당국자에게 호소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당국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의 삶을 더 가련하게 만들었을 때 그들의 부르짖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올라가듯이, 사람들의 부르짓음이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행동은 해방하고 치유하는 위대한 심판 행동인 것입니다. 그 심판이 마지막 재앙 뒤에 온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15:3-4,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우리는 당연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출 작전, 즉 자기 백성을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심판’ 행위에 대해 감사하리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시점은 그 이상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그분에게 감사하는 것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열방이 바라보며 스스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과연 만사를 바로잡고 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이 계신다“(시 58:11)라고 말하며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러 온 다는 것입니다. 모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요한이 보았을 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 가지 심판 행동이 있었고, 그로 인해 열방에서 온 사람들이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짓 메시아로 정죄받은 뒤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다. 하나님이 인간 법정의 판결을 뒤집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시고 결국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셨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부활은 십자가 자체가 죄와 죽음을 저주하고(신 21:23) 처형한 위대하고 극적인 심파 행위였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한다고 요한은 본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5~8절까지는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주는 환상이 나오고 있는 내용입니다.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속에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증언한 것을 통해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린양 안에서 드러난 ‘심판’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래서 ”괴물과 그 우상, 그리고 그 이름의 숫자에 맞서 승리를 거둔“ 사람들은 순교자이고, 그들은 홍해를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들이 죽음을 통과했고, 출애굽기 15장의 모세와 미리암처럼 이제 하나님이 행하신 새로운 심판 행위를 기리는 새 찬양을 부르며 서 있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재앙이 점점 거세졌고, 바로와 그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그들을 홍해를 통괴했고, 노래를 불렀고,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계시의 불과 연기와 함께,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 자체에 대한 지시만이 아니라 성막, 곧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만나실 ‘증거’의 장막 혹은 회막에 관한 지시도 주십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의 전신인 것입니다 이제 환상은 새로운 반전을 통해 요한은 하늘 성전의 중심이기도 한 하늘의 알현실 안에 ”증거의 장막“이 있음을 봅니다. 이 ‘장막’은 모세나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사들이 이집트가 아닌 바벨론에, 또 그의 유혹으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오기 위해 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두 장에서 용과 두 괴물을 지나왔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파괴적인 길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파괴자가 파괴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일곱 재앙의 목적이고, 그 뒤를 잇는 대격변 심판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의 심판을 고대하고 기대하는 갈급함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