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38. 18:9-24. "바벨론의 멸망"

이헌교 2025. 4. 10. 11:39

 

오늘 본문은 멸망하는 바벨론에 대한 세 계층 즉 왕들과 상인들, 선원들의 애가가 불려지는 내용입니다. 이 세 계층은 바벨론의 범죄와 멸망을 함께 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통곡하는 것은 바벨론을 위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바벨론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갑자기 찾아온 것입니다. 왕과 상인의 긴 탄식은 요한이 이사야 23장과 에스겔 27장의 자료를 하나로 엮은 것입니다. 그들의 탄식은 물론 손실이 막대하긴 하지만 거래 기회의 상실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 바벨론의 신속한 몰락 속도로 인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즉 오늘날 거대 주식 시장의 붕괴로 백만장자가 하룻밤에 빈털터리가 되듯이 묘사에 담긴 충격에서의 핵심은 붕괴 속도인 것입니다.

 18:9-10,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바벨론의 멸망을 보면서 통곡하는 첫 번째 부류는 권세와 영광을 누린 권력가인 왕들입니다. 왕들은 바벨론 즉 로마와 야합하여 권세를 잡고 왕권과 부와 사치를 누렸고, 그와 함께 음행하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17:2). 그러므로 그들은 로마가 멸망당할 때 첫 번째 타격을 입었고 이로써 통곡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통곡하고 슬퍼한 것은 회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권력자로서 누리던 특권과 부를 모두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땅의 왕들이 크고 강력해 보였고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여겼던 바벨론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충격적인 탄식과 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7절상 까지는 땅의 상인들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땅의 상인들은 바벨론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탱해 주기 위해 상품을 공급한 자들입니다. 왕들이 바벨론과 더불어 지상의 권력을 누린 자들이라면 상인들은 부를 누린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슬퍼한 이유는 더 이상 자기들의 물건을 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 제국의 중심지였고 무역과 상업이 성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의 황제를 비롯하여 시민들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이익을 잃어버린 상인들은 울며 슬퍼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금과 은, 보석을 비롯한 나머지가 애당초 누구도 기뻐해서는 안 될 악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중 상당수가 21징의 새 예루살렘에서 영예로운 위치를 차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는 12~14절에 나열된 모든 고급 상품을 땅 끝에서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3절 마지막에 진실을 드러내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한은 밀가루, , 소 등등 기본 교역품과 함께 엄청난 목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뒤 맨 마지막에서 물건들 가운데, 사람의 영혼, 즉 생명이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할 때, 우상은 제물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물 가운데 일부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를 만납니다. 고대 세게에서 노예가 갖는 의미는 오늘날 가전제품처럼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노예 제도는 일이 수행되는 방식이었고 노예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출애굽의 하나님, 노예를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계시록의 엄청난 분량이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하셨던 그 일을 이번에는 우주적 규모에서 다시 하실 것이라는 기초 위에, 또 노예를 해방하는 기본 행동이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과 함께 이미 일어났다는 기초 위에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요한은 바벨론, 즉 로마를 보면서 마음의 눈으로 노예 시장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 체제는 부패했고, 이 부패가 그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17절하~20절까지는 선원들의 탄식입니다. 이 구절은 앞의 상인들의 탄식의 연장으로도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 탄식한 것은 그 상인들의 상품을 운반해 준 선장들과 모든 승객들, 모든 선원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배를 타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운업을 종사하는 자들로서 땅의 상인들과 결탁하여 상품을 운반해 주는 일로 크게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바벨론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고발하고 정죄했고 이제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똑같은 판결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20). 하나님은 신명기 19:16-20의 옛 율법을 이 특정한 사례에 적용하도록 허락합니다. 즉 거짓 고발자는 자기가 희생자에게 가하려고 계획했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1~24절은 바벨론의 멸망이 지금까지 말로 선언되었지만 이제는 한 힘센 천사의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음녀 바벨론이 실제로 완전히 멸망당한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8: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이 장면은 에레미아에게 걸맞거나 예수님에게 걸맞은 예언 행위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두 분 모두 돌을 물에 던지는 것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에레미아(51:63-64)는 자신의 말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돌에 묶어 유브라데강에 던지며 이렇게 선언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아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하리라”. 예수님은(9:42) 어린이를 학대한 데 대한 처벌로 사람의 목에 맷돌을 달고 물속으로 던지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고, 또 그분은 아마 성전 산을 의미하는 이 산이 ’바다에 빠지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11:23). 이제 요한은 한 천사가 중요하고 인상적인 예언적 상징 행동을 실행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바다로 던져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돌처럼 가라앉아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며 담대히 고난을 이겨내고 신앙생활을 이어가자고 독자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오늘날의 바벨론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